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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Jan 30. 2023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여자가 되게 만들어요

행복이 내려앉았다_






꼼꼼하고 까칠하게 살아보니 그 FM 같은 성격이 나를 더 병들 만들었다. 육아와 일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혼자 부단히 노력해 보았지만 번아웃이 아닌 우울증이구나 셀프 진단을 내렸다. 태어난 김에 산다잖아 기안 84처럼 살아보자 설렁설렁 살다 시작한 브런치 프로젝트 작가 모임이 시작되었다.




매주 글 한편씩 발행한다는 약속을 해놨으니 쓰긴 쓰는데 얼마나 갈지 나도 나를 못 믿고 있지만 이번만큼은 실패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가족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엄마표영어 모임 200명에게 나 글 써요 광고도 하고 어떻게든 이어나가지만 그들은 관심이 없다.




휴 다행이야. 생각보다 반응이 좋으면 어깨에 뽕 달고 다닐 텐데 내 글 실력이 한참을 못 미쳐서 나대지 못함을 감사할 뿐이다.  몇 편 쓰지도 않았는데 왜 이럴까 남사시럽다.






160명의 작가님들은 생각보다 글을 잘 썼다. 처음엔 어떻게 저렇게 쓰나 질투도 났지만 점점 넘사벽이라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고 가래떡처럼 뽑아내는 기술과 주제는 또 어찌나 맛깔난지 희로애락이 다 있었서 울다 웃다 공감박수 세 번을 날렸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데 작가들의 수다는 처음엔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직업도 다양 아는 것도 많아서 뭐 하나 물어보면 대답이 척척척 나왔다. 아이가 아플 때, 문제집, 층간소음, 여행정보, 영양제, 마른 아이, 다이어트, 시댁이야기, 악플러, 전시회, 강원도맛집, 제주도날씨 등 인스타 릴스 수준의 다양한 정보와 알고리즘이다.  




자꾸 좋은 책을 알려주고 심지어 중요 부분까지 밑줄 그어 주는 차린 밥상에 수저까지 쥐어주고 글을 안 쓰면 쓰라고 독촉장도 날려준다. 고민하다 얼떨결에 들어간 독서모임은 2주에 한 권은 읽게 만드는 아니 일주일에 한 권은 읽게 만드는 힘과(서로 이 책이 좋다 읽어봤다고 하니 쫄려서 뭐라도 들고 있게 된다), 추천해 준 책에 고맙다 말해주면 기분이 또 그렇게 좋아 다른 것도 찾아봐야 할 거 같은 자동 등업시스템 모임이다.  






그렇게 2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나만의 보상이 생겼다. 글 1편씩 발행할 때마다 5,000원씩 모아서 약속한 100편이 완성되면 나 홀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 있는 모습을 말이다.

아직 글 한편을 쓰는데 거의 4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건 쓰다가 완성을 못하고 서랍에 저장과 동시에 또 다른 걸 쓰고 있는 산만한 작가인데 쓰다 보니 머릿속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난 하수 작가다  


글이 쉽다
읽기 수월하다.
흐름이 끊기지 않고 술술 읽힌다.



하수 작가가 너무 사랑스럽다면 웃길지도 모르겠다. 내 삶도 시끄럽고 복잡한데 글 마저 그러고 싶지가 않아서 대충 속에 웃음 포인트와 공감과 위로가 있었으면 좋겠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내 글로 사람들이 단 3분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고 추운 날 포장마차 어묵국물 딱 그 정도였으면 한다.






한 3년 혼자 일하면서 감정을 많이 눌러 담다 표현을 못해 아팠다고만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같이 공감하기 시작하니 내 마음이 아물었다 쓰리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걸 보면 진실이라는 정서가 나를 치유하게 만든 거 같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퍼주는 알 수 없는 사람들(얘들아 1기) 악플에 힘겨워하면 남이사를 난발하며 위로해 주고 작은 글에 잘한다 잘한다 재롱잔치 미소를 날려주며 인생에 큰 일들을 글로 써 내려가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고생했어 담담하게 위로해 주는 밥 한 끼 같이 먹어보지 못한 이 사람들이 점점 궁금해지고 고맙다.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삶이 힘겨워 대충 보고 선택한 글쓰기에 퐁당 들어왔다가 운명을 만났다. 재미없다 힘들다 노래 부르니 진심으로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을 떼로 보내주어 나를 춤추게 한다. 좋은 것들을 주고받아먹고 소화 잘 시켜서 쑥쑥 크고 싶다.




내 마음속에 행복함을 심어주고 가셨습니다.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여자가 되게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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