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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Feb 01. 2023

맥주는 내 친구

맛으로 삶을 말하다





나는 하루에 물을 한잔도 안 마신다. 새해마다 챙겨 마셔보자 다짐하지만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처럼 말만 반복될 뿐 달라지는 건 없다.


자랑이 아니라 물 맛이 너무 싫기도 하고 목이 안 마른데 어쩌란 말인가 밥상머리에서 물과 컵을 챙기지 않아 남편이 밥 먹는데 물 생각이 안나냐는 말을 10년쯤 들으니 실과 바늘처럼 그들을 위해서 챙겨주는 성의는 생겼다.






유일하게 내 손으로 먹는 물종류는 커피와 맥주다. 하루 무사히 마쳤다 소소한 행복이자 쉼으로 한 캔 딸깍 소리마저 사랑스럽다.

신혼 때 즐겨 마셨던 맥주는 카프리, 카스, 버드와이저, 코로나 같은 순한 맥주들이  병도 이쁘고 맛도 좋 기분 전환하기에 좋았다.



아이 한 명을 배출하고 나서 조리원 동기 엄마들 추천으로 블랑 1664, 호가든 같은 시트러스향과 과일맛이 나는 것들로 취향이 변했다.



임신과 모유수유까지 2년을 알코올기 빠지고 마신 것이니 얼마나 꿀맛인지 아이 재우고 10시쯤 드라마 한 편 돌리면서 한 캔 씩 마셨는데 남편이 그걸 보더니 주정뱅이냐고 농담처럼 던진 말에 술맛이 뚝 떨어져 한동안 찾지 않았다.  친정아빠가 매일 술을 달고 살았기에 욱함이 올라오기도 했고 나랑 정 반대로 남편은 콜라마니아 치킨에도 맥주를 찾지 않는 대단한 놈이라 맥주의 청량함을 같이 나눌 길이 없었다.





이쁜 첫째를 키우다 둘째는 날 닮은 딸 생각이 자동적으로 따라오기 마련 지옥 같았던 입덧의 시기를 어떻게 잊고서 출산과 모유수유까지 연속재생이다. 한 명과 두 명 육아는 하늘과 땅인지 둘째는 사랑이라 달콤한 사탕발림만 소문낸 사람들 찾고 싶었다.

애들이 안 잔다. 잘 때까지 기다리고 윽박지르다간 힐링은 고사하고 내 성격만 나빠질 거 같고 남편은 한결같이 맥주란걸 사 온 적 없고 본인 마실 콜라는 떨어질세라 착착 채워둔다.



차갑고 시원한 보리음료가 아른아른 너무 간절해 둘째 돌까지 참아보려 했지만 내 의지는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자 무너져버렸다. 마시던 꽃향 맥주를 마셔 보지만 밍밍하고 즐거움이 없어져 서글픈 찰나 새로운 맥주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아이들



그동안 가볍고 청량하게 향기 폴폴 나는 맥주는 신혼기간 삶이 달달할 때나 시원하게 넘어갔던 거다. 노동주처럼 쓴맛이 느껴지는 것들로 나는 안착했다.



그래 이 맛이야!
파울라너, 홉 13, 하이네켄, 스텔라, 클라우드처럼 묵직한 것들이 좋아졌다.


친정에서 밥을 먹는데 여동생이 한마디 건넨다.

" 언니 맥주 취향이 좀 달라진 거 같은데 원래 이런 거 안 마셨잖아."

" 응. 전에 마셨던 맥주들이 맹물 같아서 아무 맛이 안나더라고 근데 요즘 먹는 건 쓴데 달아."

"스트레스 너무 받는 거 아냐? 어떻게 맥주가 쓴데 달아??"

" 어... 애 셋(남편과 아이 둘) 키우면 그렇게 된다. 음식에도 청양고추 넣어야 시원하고 잘 넘어가더라고 내가 언제 그런 거 넣어 먹는 거 봤니. 결혼해서 살아 보니까 음식도 맥주취향도 달라지더라"



씁쓸한 맥주들만 마시다 기안 84처럼 살아보자 혼자 다짐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 소로소로는 무엇을 마셨냐면 트레이더스에서 테라를 박스로 사 와서 챙겨 마셨다. 대충 하루만 살아보자 했던 시기엔 나름 달달했었나 보다 물 같은 맥주도 힐링을 주었으니 말이다. 그 기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을 텐데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나는 다시 씁쓸한 놈들과 글이 잘 써지는 날에는 꽃향기로 딸깍 한다.



지금 냉장고에 있는 맥주들


 

인생에 따라 내 미각도 변한다. 과일맛 씁쓸한 맛 진한 맛 청량한 맛 밍밍한 맛까지
남이 주는 데로 먹을 때도 내가 골라마시는 날
먹고 싶은데 못 마시는 날
앞으로 어떤 맛들로 채워질지 다양한 맛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길 바라본다.
( 데낄라, 고량주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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