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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Jan 10. 2023

취향, 좀 존중합시다

행복한 이해






몇 년 만에 단 둘이 나가는 걸까? 데이트 같은 거 말이야. 결혼 후 부부가 되어서 단둘이 나가는 건 교제가 아니니까 데이트는 아니고 외출이라고 해야 하나 보다.



두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영화도 보고 바람도 쐬고 오라고 친정엄마나 동생이 종종 말은 했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나가서도 시간 체크하면서 있는 게 신데렐라 12시 땡도 아니고 여유로움 없는 외출은 나에게 힐링이 아니었다. 안 하다 보니 지금까지 아이들을 맡기고 나가는 일은 다섯 손가락 꼽을 정도로 적고 심지어 이제는 넷이 아니라 둘이 타서 아이들의 쫑알거림 없는 차 안의 공기도 생경할 지경이다.






오늘 일정이라고 해봐야 차량시승과 영화 보기 중간 텀에 밥 먹기 정도지만 시간으로 따지면 6시간 동생혼자 두 명을 컨트롤하려면 각자의 놀잇감과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징징거림이 줄어든다. 다행스럽게 아이 둘 다 영어 듣기 미션완료 상품을 오늘 개봉하기로 한 큰 그림을 그려뒀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는 당부를 하는 나에게 얼른가라며 잘 있을 거라는 아이들에 배웅까지 받으니 많이 컸구나 싶었다.  




올해 우리 차는 14살 여기저기 아프다며 병원에 가야 하니 돈을 주세요 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새 차를 사야 한다고 했고 몇 년간 택도 없으니 고쳐서 다니라 하던 차 부모님이 눈에 들어왔다. 더 늙어 거동이 불편하면 여행도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니까 이제는 차를 바꾸자라는 제안을 남편이 놓칠 일은 없었다. 






시승센터에 일찍 도착한 우리는 안내원이 없어서 20분 정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새 차를 사고 싶어 했고 차에 대해서 잘 아는 남편은 마치 백숙만 먹다가 후라이드를 한입 베어문 눈빛으로 차종별로 이거 저거 구경하며 재미있어했지만 차에 관심 없는 내 눈엔 검정, 블루, 베이지, 메탈, 흰색의 이동수단이 쭉 나열되어 있구나 추워 죽겠는데 얼른 사람이나 왔으면 동상이몽이었다.

 



직원이 차키와 이미 내비게이션에 왕복 거리가 세팅돼있으니 30분 안에 돌아오면 된다는 안내를 받고 우리는 출발했다. 매장에서 차량을 봤을 땐 몰랐는데 직접 타보니까 다르네라고 거들어 주었더니 남편은 당연하지 비교할걸 비교하라고 하면서 이거 저거 기능들을 설명하지만 큰아들이 프라모델 하나 완성하고 엄마 앞에서 너무 멋있지 않냐고 설명하고 엄마는 어... 그러네 정도의 액션을 날리는 정도였다. 




시승이 끝나고 남편이 화장실 간 사이 추워서 내가 먼저 차에 타고 있는다며 차 문을 여는 순간 이거 뭐지 우리 차가 오징어처럼 보였다. 시크릿가든의 현빈과 남편을 번갈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그 정도 체감이면 차알못 여자도 어쩔 수 없는데 남편이 그동안 많이 사고 싶었겠다 웃음이 나왔다. 



 





남자들에게 차는 소유해도 신차가 나오면 또 바꾸고 싶은 것이며 여자에게 명품백은 하나 있어도 다른 것에 눈이 돌아가는데 이 집여자는 28살 이후 물욕이 사라져 버려 닳거나 고장 나거나 필요해야 구매하는 사람이었다.

주위에서 새 차를 바꿨다고 나 들으란 듯이 말하는 남편에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은 차는 새 차야 어차피 타다 보면 다 헌 차니까 좋아할 거 없다고 말해준 게 민망했다. 






점심은 뭘 먹을까 물어보니 아무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 세상 제일 싫어하는 메뉴는 아무거 나다 반찬걱정이 일상인 나에게 단둘이 나와서 또 메뉴를 찾아야 하는 게 성질났지만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햄버거 먹자고 했다. 햄버거 꼭 먹어야 해? 아무거나에 햄버거는 없었냐고 하려다가 투닥거리기 싫어서 간장게장으로 선택하고 출발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간장게장을 먹어본 적이 없다. 먹기도 불편하고 밥도둑이라는데 이 세상 먹을 것도 많은데 짜디짠걸 흰밥에 비벼서 내장도 비리고 남자친구 앞에서 예쁜 모습 보이고 싶지 손가락 쪽쪽 빨면서 먹기도 싫고 음식을 비닐장갑 끼고 먹는 것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게장을 먹다 보니 신혼 때 추억이 하나 떠오른다. 시댁에서 꽃게찜을 했으니 오라고 해서 가보았더니 10kg을 쪄서 바닥에 두셨는데 빙 둘러 그냥 앉아 먹으라고 하셨다. 문화의 충격이 이런 건가? 순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서있었더니 바닥에 10kg 꽃게들이 배를 보이며 나에게 외친다. "어서 와 이런 건 처음이지 앉아서 너도 한번 뜯어봐." 오늘은 꽃게로 배를 채우는 날이야. 정말 그날 꽃게만 먹었고 집에 와서 물을 얼마나 들이켰는지 모른다.



친정집에서 꽃게는 가을철 1kg 사 와서 꽃게탕을 끓이면 4 식구가 먹고도 남았는데 시댁 취향은 꽃게찜 했으니 먹으러 오라는 건 10kg는 쪄야 하고 게장은(무한리필이 없던 시절) 식당에서 배에 차지도 않을 양이라서 외식하는 곳에서 제외 대상이었다. 

10년을 살다 보니 내 입에서 게장을 먹자고 하는 날도 오는구나(남편은 내가 게장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뭘 먹을지 고민하기 싫을 땐 상대방이 좋아하는 걸 먹으면 평타는 치게 된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영화 보기이다. 남편과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2013년도에 개봉한 변호인 내 기억으로는 거기까지 인데 중간에 다른 걸 봤었나 아무리 기억해본들 기억이 없는 거 보니 봐도 본 것이 아닌 거 같다. 

몇 년 뒤 아들이랑 본 알라딘 최근에 본건 여름에 동생과 아이들 조합으로 넷이 함께 본 미니언즈다. 






남편은 콜라와 팝콘을 좋아한다. 나는 탄산음료를 싫어하므로( 햄버거 먹을 때 콜라 없이 햄버거와 감자튀김만도 먹을 수 있다) 나의 최애 공차 밀크티를 포장해서 영화관에 들어와 기다린다.  

거의 10년 만에 남편과 함께 보는 영화는 다름 아닌 더 퍼스트 슬램덩크 꼭 나와 봐야겠냐고 3번이나 물어봤고 남편은 싫으면 혼자 본다는 말에 씨앗이 있는 거 같았다. 아냐 같이 보지 뭐 ( 스포츠랑 만화를 싫어하는데 그걸 또 같은 조합으로 영화로 만들었네) 제목까지 콕 찍어서 말하며 영화 보자고 하는 일이 별로 없다. 









30분이 지나니 좀이 쑤시고 1시간째 되었을 때 졸음이 쏟아졌다. 오빠? 이거 설마 2시간 동안 경기 1개만 하는 거 아니지?? 응 맞아 한 개만 해 하면서 빙그레 웃는다. 

내가 아는 슬램덩크는 강백호, 잘생긴 서태웅 정도였는데 주인공도 다른 거 같고 스토리도 너무 잔잔하다. 간간히 남자들만이 같은 타이밍에 웃는 걸 보니 신기했다.( 몇 없는 여자관객 아이들은 조용하다)

마지막 30분은 봐줄 만했고 중간에 음향이 멈췄는데 나는 왜 소리가 안 나지 너무 길게 안 나는데 하마터면 남편에게 음향사고 났다고 말할 뻔했다. 

영화 보는 도중에 눈치 있는 동생은 두 장의 사진과 한 번의 전화를 날려줬다. 사진은 딸이 자고 있는 모습 전화는 엄마가 보고 싶다는 딸의 요구를 말이다. (이런 융통성 있는 녀석을 보았는가) 







집에 돌아오는 차 안은 출발할 때 생경한 느낌과 달랐다. 시승도 점심도 영화선택까지 내 취향이 반영된 것은 없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아이에게 맞춰진 삶을 살아오다 남편의 시선에서 짧은 6시간은 새로웠다. 어쩌면 남편도 10년 동안 자기 취향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으리라 앞으로 남편의 취향을 체험하는 일이 종종 있을 거 같다. 



이날 내가 선택한 유일한 것 중 제일 좋아하는 공차 밀크티는 유난히 더 달고 평소에 하지 않았던 펄 추가는 과했다. 

오늘 글감을 선사해준 오빠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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