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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Jan 04. 2023

평범한 살인자

3분이면 죽일 수 있어






리프레쉬 휴가를 마치고 다음 현장이 정해졌다. 많은 곳 중에 왜 하필 인천 그것도 검단으로 말이다. 20대 놀거리 볼거리 찾아다닐 나이에 가혹하다 투덜투덜 발끝에 돌멩이를 걷어 차 보지만 주위엔 아무것도 없다.  

무정한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봄날 따스한 햇볕은 내 등짝을 따땃하게 해 주고 도로가 옆으로 밭에는 쑥과 냉이 소똥냄새 만이 잘 왔다고 나를 반겨준다. 요즘도 똥을 밭에 뿌리며 작물을 재배한다고 교과서에서 볼 법한 일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니 실소가 터졌다.  




2008년도쯤 신도시 붐이 일어났으니 영종, 검단, 청라 뜨겁게 떠올랐다. 인천에서 살고 있는 나는 이해가 1도 가지 않았지만 나라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구나 이런 곳에도 사람들이 와서 살긴 할까 의문이 들었다. 

모델하우스 홍보기간 직원들도 주말에 구경도 가고 이벤트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지하철은 물론이고 큰 대형마트도 없는 곳에서 시골 분교 느낌의 학교 하나만이 유일한 건물인데 어떠한 감언이설로 분양을 할지 조금씩 궁금해졌다. 






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청약 경쟁률 쭉쭉 올라가 타 지역에  살고 있는 직원들까지 청약을 넣고 당첨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렵사리 로또 1등 당첨된 사람들은 웃음꽃이 만발하고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한턱 쏘라며 채근하는 말에도 빙그레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못 이기는 척 기꺼이 기쁨의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완공까지 몇 달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몇억씩 붙었던 프리미엄은 신기루처럼 서서히 사라지고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3억 5천에서 몇억이 올라갔던 집값은 쭈욱 아래로 다시 곤두박질쳤다. 그래도 없어지는 건 아니고 집이라도 남으니 다행 아니냐는 말을 했다간 그날은 스타워즈 광선검이 날아오거나 귓방망이는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상황은 최악이었다. 






여차저차 사전점검이 이루어진다는 안내장을 고이 접어 발송되었고 직원들은 한껏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파트 현장이 처음인 나는 와닿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불안감 따위는 없고 퇴근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발랄한 20대 여자사람이었다. 




큰 탈없이 사전점검 3일이 지나갔고 끝인 줄 알았던 행사는 이제야 서서히 서막이 올랐다. 매일 하자보수에 대한 민원과 알 수 없는 욕설을 들어야 했다. 현장에 여직원은 나 하나였기 때문에 오롯이 그 전화는 내 몫이었고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과 담당자를 연결해 달라고 하면 자리에 없어서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되었다. 






내 일이 그것이기에 기꺼이 감당해야 했지만 월급에 그런 쌍욕도 포함되어 있었던가 26살이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하자가 왜 이렇게 많은지 항의할만하다고도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함과 욕설이 정도가 지나쳐 심할 땐 수화기를 살포시 15센티 떨어트리는 게 전부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니 맷집이 생겨났다. 

손발 벌벌 떨며 듣기만 하다 궁금한 건 담장자에게 전화 메모 남겨 드릴 테니 동호수를 알려 달라는 말도 하게 되었다.  입주예정자는 본인의 동 호수를 모르는 사람도 있고 당신이 무엇을 샀는지 타입도 모른다고 했다. 금액이 몇 만 원도 아닌 3억 5천만 원짜리를 사면서 어떻게 모르며 한 채도 아니고 두 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준공이 안되길 바라는 이들로 가득했다. 




2009~2010년 영종, 검단, 청라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아파트를 지어 놓은들 누가 와서 살고 싶단 말인가 교통 역시 열악해서 다니는 버스도 거의 없고 택시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30~40평형 아파트 전세가 1억 아래로 뚝 떨어졌으니 갭투자의 말로는 처참했다. 




갭투자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gap) 이 작은 집을 고른 후에, 전세 세입자를 구하고 그 전세 세입자가 들어갈 주택을 매입하는 것을 말한다. 갭 투자의 성행은 주택가격 상승을 일으키며, 이는 전세 제도의 부작용 중 하나이다.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투자에 들어가는 자본이 적어진다. 예를 들면 집 구매자가 3억으로 아파트를 구하려 할 때 그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가 80%(2억 4천만 원)이면 집 구매자는 그 아파트에 들어가 살 전세자를 구해 그 돈으로 대금을 치르고, 나머지 6천만 원은 자기 사비로 내면 되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실제 투자금액에 비해 적은 자본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준공 서류가 넘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위는 더 격앙되었고 거친 몸싸움도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전화로 담당자를 바꾸라는 말에 지금 자리에 안 계신다 대답하는 여직원 대답에 "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전화하죠."라는 고운 말이 나올 리 없었다. 






매일같이 전화 오는 그분은 오늘도 나를 잡아먹을 듯이 닦달한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담당자 왜 안 바꿔 사람 무서운지 모르나 본데 니들 딱 기다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지금 밖에 사람들 많이 모아놨어. 

......... (내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자 더 화가 차올랐나 보다.)

"너 이름 말해. 건방지게 내 말 듣고 있어? 

이년이 날 무시해. 곳 갈 테니 곱게 퇴근할 생각하지 마! 내가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니 배때지 내가 오늘 사시미 칼 들고 가서 제대로 갈라 주겠어."

살다가 이런 말은 처음 들어 보았다. 너무 놀라 심장이 벌렁거리고 순식간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지만 듣고 싶지 않다고 끊을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이 한참을 욕설을 듣고서야 입에서 말이 나왔다.




"제 이름은 소로소로입니다. 그런데 제 배를 가른 들 아저씨 마음이 편해지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 당시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이 튀어나와서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듣는 욕설과 불안함을 안고 퇴근길은 녹녹지 않았다. 

한숨을 쉬며 힘없이 말한 그날 이후 다시는 전화 오지 않았다. 나를 죽인 들 떨어진 집값이 다시 오를 수 없다는 걸 그 아저씨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현장은 서울이었고 집값은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아이러니하게 그곳에서 준공이 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이들은 없었고 사전점검 현장은 축제와 같았다.


 




지금은 예전보다 인식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악플과 입에 담지 못한 말들에 시달린다. 거울을 보며 자기 자신에게 욕을 하는 사람은 없다.

언어의 레벨이 인생의 레벨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어느 레벨에 있는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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