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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Dec 28. 2022

다 좋아하는 여자

태어난 김에 사랑해 줄게







엄마가 말하길 어릴 쩍 넌 참 진득하게 하는 게 없어라는 따뜻하고 훈훈한 말씀을 해주셨다.  

피아노, 바이올린, 발레, 컴퓨터, 수영, 윤선생영어 남이 하면 멋있어 보이는 것들로 나도 살포시 발을 담그고 이거 저거 휘저어 보지만 몸뚱이에 노력과 이겨냄이 장전되지 않았으니 길게 이어지는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10년 채운 것이 있다면 건설회사 다니기 일 것이다. 맨 땅에 착공이 되고 준공되면 다른 지역으로 옮기곤 했으니 새로운 맛도 있었고 현장엔 정말 상상이상 사람들과 별별 일들이 지천에 깔질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끈기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었지만 나이 먹고도 새로운 걸 해보는 건 여전히 좋았고 그 마지막 타깃은 아이들이었다. 예민한 성격의 첫째 아이는 한번 시작하는 게 어렵 적응을 하면 그냥 군소리 없이 루틴을 이루어 나갔다.

어쩌다 엄마표 영어를 접하고 일 년 정도 자리 잡을 때쯤 교육콘텐츠 영상이 눈앞에 들어왔다. 아이 문해력과 독서 글쓰기가 나중에 공부와 밥벌이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옥같은 말들이 나의 귓가를 팔랑팔랑 거린다.






[엄마성장클래스] 2022년 돌아보니 변변히 한 것도 없는데 벌써 11월.

뭔가 아쉽다면, 남은 두 달을 놓치지 마세요.

오호라 글쓰기 코칭 클래스가 열린단다. 심지어 내년엔 없을지도 모른다고 벌써 150명이 신청했고 오늘밤 마감이란다. 이건 꼭 듣고 내 아이 팔자를 고쳐 줘야 한다며 쓱 카드를 긁고 강의날을 기다렸다.

불타는 금요일 졸린 눈을 비비며 믹스커피를 먹어본들 글쓰기 강의에 뇌를 깨워줄 리 없었다. 속절없이 고개는 키보드로 처박혀 가다 강의 가 끝나갈 무렵 과제를 내주신다.





haWhat the hell …?  머선 일이고??

작가라 되라며 매주 1편씩 글을 써서 내라고 심지어 검사를 하신단다. 난 무슨 강의를 돈 주고 듣는 거지?

아이표 글쓰기 강의인줄 알았는데 200명 중에 나만 몰랐나 보다. 꼼꼼하다는 나인데 대충 확인도 안 하고 2022년 변변하게 한 거 없다는 말에 꽂혀서 신청했구먼 과제 뭐 대충 제출해야지 생각하는 찰나  줌수업  채팅창 "엄마표영어 하시는 소로소로님 아니세요?"

좁다 좁아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 마상에 내 이름이 특이하지도 않은데 어찌 알고 딱 집어서 반가움 보다 마치 학교에서 학부형을 만난 느낌이랄까 민망함이 밀려왔다.






오 신이시여 이제 새로운 거 그만 찾겠습니다를 외치고 싶었다.


어떻게 쓰나 고민할 틈이 없이 먼저 치고 올라오는 예비 작가님들의 글이 하나 둘 채워지는 폴더와 내용들은 기가 더 눌렸지만 뭐라도 써야 했다. 강의 중반부로 치달을 때쯤 하나 둘씩 작가가 되어 나타나셨다. 나름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말과 글은 따로국밥이었으니 머리와 손은 내 것이 아니었다. 쓴다고 쓰는 글들은 하나같이 더럽게도 재미없고 작가 너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냐? 묻고 싶었다.  

첫 번째 쓰레기는 보기 좋게 떨어지고 정신을 차리고 요즘 트렌드에 맞는 글빨을 찾아 욕도 써가면서 두 번째 글로 합격을 했다.






그렇게 합격한 작가놀이는 설렁설렁하면 되는 줄 알았다. 애초에 돈 벌 생각이 없었던 지라 나중에 나만의 책이나 한편 써볼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빨리 이루겠군 뿌듯함에 내 어깨를 토닥토닥이며 방구석 쭈글이 같은 내 자존감을 셀프로 채워 넣었다.

150명의 작가님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글이 올라오고 다음과 브런치 메인에 나 잘 쓴 글입니다 도배되었다.





오호라 나도 욕심이 생긴다. 마흔 살 우울한 이야기는 걷어 치우자 너도나도 마흔에 우울한 일들만 읽고 싶겠는가 아이들의 즐거운 일상도 한번 담아 봐야지 에피소드는 처음부터 재미있을 줄 알았지만 제목으로 눈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것은 선택받지 못한 글일 뿐이다.

MZ세대의 자극적임을 한껏 무장했다. 그래 이번 글은 무조건 클릭하게 만들겠다는 나의 바람은 거침없는 그들의 손가락으로 인정받았다.

일도 육아도 매일 똑같아서 누구 하나 나에게 궁둥이 세 번 팡팡 때려주질 않는데 돈이 되지 않을지라도 내 글을 기다리고 라이킷 눌러주는 그들이 있어서 나에게 어떠한 보상보다 달콤했다.





글을 더 잘 쓰려고 용쓰다 보니 잡생각이 떠나가고 우울감이 흩어져 없어졌다. 생전 듣지도 않던 장기하, 이상순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남편이 취향 참 독특해졌다고 한마디 얹어 말해준다.

이거 저거 다 좋아하는 여자가 이제야 마음에 온기와 볼가에 생기가 퍼진다. 앞으로 다른 새로움에 집적거릴지 모르겠으나 엄마가 말했던 진득함을 작가로 보여줘야겠다.




태어난 김에 작가로 살아가보는 게 어떤가 소로소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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