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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Oct 18. 2023

정말 최선을 다했어

 키우는 건 다 힘들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62일 기록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겨우 라벤더 하나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줄 몰랐다. 마치 고3 수능을 마친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이라면 적절한 표현이다.  

시작만 빠르고 제일 꼴찌로 발아를 하는 40일을 넘겨 보여주는 라벤더를 반신반의하며 행여 옮겨 심어서 죽을까 봐 선택하기까지 고민했던 날도 만만치 않았다.  




4.5센티를 넘기자 이제는 뿌리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지피포트로 옮겨 주기로 했다. 잘할 수 있을 거야 심호흡하고 시작해 보자. 




1. 부직포를 살살 벗겨줬다. 그냥 심는 식집사 분들도 많았는데 뭔가 뚫고 뿌리가 나올 거 같은 느낌이 아니라서 가위로 살짝 뜯어주고 보니 세상에 뿌리가 바질처럼 그득할 거 같았는데 거의 없어서 좌절했다. 와 이러다 심었는데 적응 못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싸하게 불안했다.  


2. 아래쪽 흙을 조금 덜어주고 아직은 야리야리해서 조금 깊게 흔들리지 않게 심으려고 고민했다. 두 개가 적당한가 싶다가 물을 좋아하지만 과습에 약한 라벤더 그리고 물을 자주 주고 파하는 식집사의 성격을 반영해서 3개씩 심어 주기로 했다. 일단 움직이지 않게 모양을 잡아 줬다.  


3. 그로로에서 주신 흙과 삽을 이용해서 귀퉁이에 흙을 채워줬다. 삽이 뾰족하고 작아서 사용하기 너무 편했고 추가로 구매한 중간 사이즈 난석을 넉넉하게 깔아주고 흙에 펄라이트 + 작은 난석을 더 추가해서 섞고 채워줬다. 난석 덕분인지 숨 쉴 공간이 넉넉 해진  지피포트를 보니 한결 보기 좋았다. 


처음 생각했던 거 보단 난석 비율이 많다. 야리야리한 라벤더 대를 잘 지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행운도 듬뿍 담아서 잘 자라주길 기원했다.  





분갈이해 주고 3일이 지났다. 내 눈엔 조금 더 튼튼해진 모습이 대견하다. 빼꼼히 겨드랑이 잎이 두 가닥 생겼다. 장한 놈들아  이제야 겨드랑이털을 보여 주다니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매직아이다.  


물은 여전하게 스포가 드로 준다. 저 작디작은 잎에도 물 방울이 맺혔다. 방울방울 싱그러움 힐링 그 자체다. 

한번 만져보고 싶은 욕망은 득실득실 하지만 그러 더 똑 부러질까 봐 눈으로만 보세요를 외쳐본다. 




2차까지 지급받은 아이들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찍어본다. 같은 날 지급받고도 다른 성장을 보이는 식물을 보면 인생살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데로 절대 될 수 없다는 거 정성과는 또 다른 것 포기하고 버려뒀던 지피팔렛에서 싹이 나오는 기적도 고양이 똥을 피해서 자라기도 아직도 2센티 밖에 안되어서 라벤더인지 다른 식물인지 한참을 고민하는 시간들이 지나간다. 날씨가 다시 추워지고 앞으로는 고난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촉촉하게 젖은 지피포트 너희 자리는 에어컨 실외기가 딱이다. 햇빛을 좋아하는 이 가을에 맘껏 일광욕하렴 쑥쑥 자라줘.  




정말 라벤더야.

키우면서도 의심을 가장 많이 한 밭떼기에서 주서다 심었다가 정확하다. 굴러다니는 널 포기하지 않았어. 이렇게 자라줘서 내가 다 고맙다. 마지막까지 가보자.  



매일 스포이트로 물 주고 바람 쐬어준 날들이 전부다. 외부에서 키우는 식집사는 비가 오면 참으로 슬펐다. 가을이 선물한 햇볕 많이 받고 자라거라. 자식만큼이나 어려운 식물 키우기 시작했으니 끝을 보고 싶다.

보랏빛 라벤더를 보는 그날까지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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