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살 만큼의 일들이 들어왔다. 아이들 학원비 소소한 경비를 처리할 정도의 금액은 가뭄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것보다 어쩌면 더 짜릿했다. 어쩔 땐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고 주부로써 삶의 만족도 보다 크기도 한걸 보면 아이들이 자람에 잊고 있었던 내면의 인정욕구가 남자들 못 지 않구나 느끼게 되었다.
돈의 맛을 알아버리자 욕심은 가차 없이 차올랐다. 몇 시간 연장을 하면 2배를 시급이 주어졌고 그 또한 일을 잘하는 사람부터 기회가 오는 걸 눈치껏 알았으니 몸이 힘들어도 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손끝이 야무지고 천성이 느리지 못한 탓에 기본만 하면 되는 걸 열심히 하니 몸은 적신호가 울렸다. 사람들이 이래서 밤 일은 하는 게 아니라 했던가 한번 생긴 구내염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혀가 퉁퉁 부어 하얗게 백태가 생기면서 이러다 사달이 나는 거 아닌가 두려움도 생겼다.
돈이란 얄궂어 들어올 때 좋지만 나가버리면 언제 있었나 싶게 허탈했다. 소유욕은 없어도 고생한 보람을 찾아볼 도리가 없어지자 다시금 지치기 시작했다. 자식들 가르치고 입에 들어가는 모습만 봐도 좋다고 하지만 매일의 기쁨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독였다. 부족한 잠으로 낮에 소소하게 즐기던 책 읽기도 글쓰기도 예전 같지 않음을 친구들보다 내가 먼저 느끼게 되었다.
포장 알바를 하면서 행복했던 시간도 분명 존재한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고 어쩌면 동질감이나 이곳에 일하는 사람의 모습에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나만은 아니구나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홀로 일하는 작업대에서 오롯이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시간을 돈으로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자들이나 시간을 돈으로 여기지 우리 같은 서민은 해당사항이 되지 않아 생각조차 머릿속에 담으면 안 된다 여겼다. 막상 하루하루 쳐내기 바쁜 삶을 살아보니 정말 시간을 돈으로 사고 싶다는 말이 간절하게 터져 나왔다. 하루 앞만 보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한 달 그저 돌려 막는 카드값 같았다. 그 좋아하던 새벽운동, 책 읽기 기, 글쓰기 어느 것 하나조차 여력이 되지 않는 체력을 가졌다.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붙잡아둔 삶은 10년이 되었고 이제는 널 위한 시간을 돌려 보라는 물음이 강렬하게 들려왔다. 그 후 야간아르바이트를 계속한다면 한 달씩 메꾸며 사는 삶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거란 두려운 생각과 어쩌란 말이냐 두 가지 물음 속에 야간 아르바이트 신청한 것을 모조리 삭제하며 그만두었다. 디지털시대에 오래되어 엔틱이라 불리는 태엽시계처럼 내가 감아내는 만큼 스스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