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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Mar 10. 2023

이익준 교수님을 찾습니다




안타깝게도 지인 찬스는 없었다. 무슨 일 있을 때 사짜 한 명은 있어야 하는구나 탄식이 절로 나왔고 병원에서 지정해 준 날짜에 면담을 갈 수밖에 없었다. 한 달에서 한 달 반을 어떠한 약도 치료도 없이 시간만 보내야 한다는 게 두렵고 몸속에서 암이 점점 진행되고 있구나 느끼며 있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복막염 수술받은 대학병원에서 진단서 받아온 동생은 착잡한 심경과 선심 스듯 충수암이라고 쓰여있는 진단서를 보험회사에 청구하라고 준거냐며 서글픈 목소리로 말을 했다.



유명한 병원들 5곳 중에서 한 곳은 이미 개복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진료조차 받지 못했고 거리가 먼 곳은 나중에 치료를 위해서 걸러졌다. 한 달을 기다려 첫 번째 S병원에서 진료를 보았는데 유명한 교수님이라 검사 후 수술날짜까지 또 한 달 반을 기다려야 했고 두 번째로 방문한 A병원은 처음 병원 보다 몇 주 더 빨리 진행이 되었다.



더 유명한 교수님에게 수술을 받고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몇 달을 흘려보냈는데 한 달이란 시간을 더 허비하고 기다릴 수 있을지 가족들은 고민에 더해서 둘 다 검사받고 기다리고 있자고 했다.



맹장수술은 흔하게들 하기 때문에 수술했다고 잘 말하지도 않는다. 듣도 보도 못한 병명 충수암 충수만 떼어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대장의 1/3을 절제하고 그 후 결과를 보고 진행한다고 했다.

충수암을 열심히 검색했는데 암 중에서  착한 암이라 진행이 더디게 진행한다고 했다. 이 세상에 착한 암이 존재하는가? 암이 착하다. 갑상선 암은 많이들 생기고 치료가 쉽기 때문에 괜찮을 꺼야라고 위로하면 그것이 위로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A병원에서 일단 먼저 진행하기로 하고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은 한 달 뒤라고 하셨다. 동생은 혹시나 수술을 당겨서 하게 된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부탁드렸다.

선생님께서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환자분 보다 심각한 사람이 더 많다며 그때 할만하니까 내가 그때 하는 걸로 스케줄을 짠 거라며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언니 슬의생의 의사들은 없더라. 너무 차가워서 질문은 할 수 조차 없어."
"그러게 사람들이 면담이라도 받아 보겠다고 그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니까 앞으로 잘 될 거야."
"의사랑 대화 시간도 없고 스케줄만 겨우 잡고 밖에 나와서 다른 의사가 설명해 주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혼란스러웠어. 어떻게 잡은 진료인데 말이야."
"유명한 병원이라서 그래 내 친구는 체인점 산부인과에서 진료 보는데 환자가 그 불쾌한 의자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뒤통수에 대고 결과를 알려줬다잖아.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을 거야"



내 입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것이 위로인 뭔지 동생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동생은 너무 불친절한 의사와 앞으로 진행을 하고 싶지 않아 했고 S병원에서 하고 싶어 했지만 가족들은 더 늦어지는 걸 볼 수가 없어서 만류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공무원이라 수술과 진료로 병가를 낼 때면 회사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병가를 내더라도 자리를 쉽게 빼버릴 수 없을 거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지만 코로나 시기에 여행사에 일하는 제부는 연봉이 삭감되고 언제 출근할지 아니면 권고사직이 될지 모르는 일상을 함께 떠안아야 했다.



가족의 아픔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소문은 금세 퍼질 수밖에 없었다. 카페에 오는 엄마 지인들의 위로와 안타까움이 고맙기도 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듣고 있노라면 눈씨울이 금세 붉어지고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서 일이 많아서 눈코 뜰세 없이 바쁠 때가 아니면 우울한 기분은 금세 차올라 감정 컨트롤이 힘들었다.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라 가뜩이나 외식도 안 하고 사람도 잘 안 만났는데 행여 동생에게 코로나가 옮길까 봐 우리 가족들은 불안했고 마스크를 더 철저하게 꼈다. 열이 나면 모든 것이 다시 딜레이 된다. 수술까지 무사히 받기를 기도했다. 간병인도 1명만 지정되어서 가 볼 수 조차 없고 전화와 동영상으로 아이들과 이모 힘내라는 용기를 전달했다.




동생은 대장을 1/3 절제하고 림프절 전이까지 되어서 3기를 진단받게 되었다.

착하다는 암은 동생에게는 해당사항 없이 착하지 않았고 진행이 빠른 케이스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앞으로 8번의 항암을 진행하게 될 테니 살이 많이 빠질 꺼라며 지금처럼 말라 있으면 견디기 힘드니 살과 힘을 키우기 위해서 잘 먹고 운동도 매일 꼭 하라는 당부를 하셨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웃고 있는 의사들과 맛깔나게 먹는 음식 사랑이야기는 티브이에서만 존재한다. 그들도 사람이라 그런 거야라고 하기엔 동생의 슬픔을 어떻게 달래줘야 하는지 모든 것을 알려주는 네이버에 검색을 해봐도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 특진 교수를 선택할 수 있다.
친절함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추가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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