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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Mar 08. 2023

행복은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이다




코로나와 함께 일희일비했지만 무탈하게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카페도 그럭저럭 적응해가고 있었고 적적했던 친정집에 동생부부가 들어와 살게 되어서 더할 나위 없이 잘 되었다며 좋아했다. 동생은 늦은 나이에 공무원에 합격해 연수를 받고 모난 직장상사가 없기를 바라며 출근했는데 다행히 즐겁게 일하는 부서라 좋아했다.




두 살 터울 자매가 가까이 살게 되니 가벼운 맥주타임도 자주 있고 잔잔한 쇼핑의 기쁨도 나누게 되어 육아의 고단함이 조금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자매의 취향 중에 비슷한 또 하나는 둘 다 탄산음료 대신 활명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소화가 안 될 때 마시는 한 병 딱 따서 꼴깍 아쉽게 들이켜는 그것을 즐겼다. 냉장고에 박카스 마냥 차갑게 한 상자 두줄로 쪼르륵 맞춰 서 있었다. 또 비슷한 건 남들보다 장이 예민해서 끼니를 잘 챙겨 먹지 않을 때 햄버거를 먹으면 꼭 속이 부글거려서 화장실을 찾았고 여동생은 냉면이나 회를 먹을 때면 종종 배탈이 났다.




퇴근 후 치맥하자고 카톡을 날렸는데 동생이 회식한 것이 잘 못 되었는지 병원에서 장염이라며 며칠 죽이나 먹으면서 음식 조절을 하라고 했다고 통보했다. 아쉽지만 동생 속이 나아지기를 기다렸다. 몇 주가 지나도 동생은 여전히 속이 았다 나빴다 반복하고 3주나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 장염도 한번 걸리면 한 달은 음식을 조절해야 하니까 되도록 굶다시피 하라고 강제 다이어트까지 처방해 주었다.



엄마와 나는 이상한 병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속이 여전히 좋지 않다는데 억지로 먹으라고 권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주말에 배가 아프다고 제부와 급하게 응급실을 찾았는데 병원에서 이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참았냐면서 대단하다고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이 되었는데 어떻게 몰랐냐고 고름이 배속에 가득해서 수술도 당장 할 수가 없다며 천운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한 달 정도 염증을 약으로 말리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집으로 왔다.

엄마는 동네 돌팔이 의사가 장염으로 치부해서 한 달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방치하다 이지경이 되었나 안타까워하시면서도 복막염인데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며 다행이라고 하느님께 감사했다.  




한 달 동안 약을 꾸준히 먹은 동생은 수술 날짜를 잡고 개복수술까지 해야 한다고 걱정을 했다. 제왕절개로 개복수술을 두 번이나 한 나로서는 그 고통을 알지만 절개 부분이 적어서 괜찮을 거라고 에둘러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수술을 받고 온 동생은 허리를 잘 펼 수 없었고 아이들은 이모가 아픈 게 빨리 나으라고 기도해 주고 안기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기다렸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할 찰나 동생에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언니 나야"
"응. 오늘 소독하러 간다고 했잖아. 잘 받고 왔어?"
"어. 그랬지. 언니.... 나 암 이래."
"뭐? 무슨 말이야.
"그때 고름이 가득해서 잘 안 보였는데 맹장 모양이 이상한 게 암 덩어리가 붙어 있어서 그런 거래."
"아니 그럼 그때 판독을 잘했어야지. 수술 다하고 이제 와서 말하는 게 어디 있어."
"그렇게 되었어. 언니 내일 집에서 이야기하자."




공무원이 되어서 이제야 조금 쉬이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어째서 동생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머리가 너무 아팠다.

장염이라고 한 달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고 동생이 복막염으로 기적적으로 살았다고 그 기쁨이 한 달을 채 가시기 전에 암이라는 시련을 주시는지 원망스럽고 믿을 수 조차 없었다.



적어도 대학병원에서 어떻게 이런 오진을 할 수 있는지 원망스러웠지만 우리는 소송도 따질 시간도 없었다.

그 당장 지인들을 수소문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마다 대기를 걸고 최대한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기를 기다렸다.



그 밤 나는 신의 존재를 묻고 싶었다.
신이시여.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이렇게 가져가시나요?
겨우 6개월 누렸습니다.
이루어지고 감사함을 잊고 지냈다고 하기엔
벌이 너무 가혹합니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직도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울리는 벨 소리에 두려움을 느낀다.

전화의 끝은 좋은 일들이 대부분 아니었기 때문에 오늘도 벨이 울리지 않고 무사히 지나길

그대여 밋밋한 하루의 감사함을 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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