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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Mar 03. 2023

너에게 쓰는 편지

사랑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이은경선생님이 오늘 만큼은 낯선 교실 처음 뵙는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과 긴장 속에 있었을 테니 잔소리 말고 잘했다고 이야기해 주라 말씀하셨는데 모든 가정의 어머니는 평안하셨는지 모르겠다.




일 년 전만 해도 아이의 등짝을 다 가릴 만큼 큼지막한 가방을 들쳐 매고 걸어가는 뒷모습만 바라봐도 눈물이 핑 돌았고 겨우 두 시간 남짓 아이가 잘했을까 긴장하다 화장실도 못 갈까 봐 아등바등했던 엄마였다.

한해만에 얼마나 간사한지 평상시 성실한 아이라 별 걱정 없이 하루를 보냈겠구나 긴장하는 마음은 온대 간데 없이 보냈다. 아이는 학교 수업도 돌봄 교실과 축구학원까지 무사패스 하고 의기양양 돌아와서 씩 웃음을 날려준다. 




잘했네 내 새끼 궁둥이 팡팡 터트려주고 쉬라고 한마디 거들어 주고 내 눈은 카페에 있던 설거지와 뒷정리로 시선을 옮겼다. 바쁘게 마감을 하고 집으로 오면 빠른 시간에 밥을 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그 시간 진품이 와 명품이는 각자 놀잇감을 가지고 놀거나 옥신각신 쌈박질에 여념이 없다. 중간중간 적당히 싸우라 빽빽 소리 지르는 의미 없는 엄마의 울림만 있을 뿐 그들은 느긋하다. 




내 딴에는 갓 지은 따끈한 밥에 닭안심을 메인으로 양파, 마늘 다진 것, 표고버섯, 숙주, 후리카케까지 야무지게 뿌려서 내어줬는데 아이들은 웩~ 이건 무슨 볶음밥이야? 한마디 던진다. 

워낙 먹는 것에 관심 없는 아이들이라 기분이 나쁘지만 매 끼니마다 있는 일이라 그런 말은 나쁜 말이라고 하고 얼른 먹으라 재촉한다. 




그렇게 먹다 보니 아빠가 왔고 재 빠르게 난 똑같은걸 다시 만든다. 이번엔 아빠가 거들기를 나 다이어트 중인데 기름에 쌀밥을 볶아서 주면 어떻게 하냐고 나발나발 거린다. 

응 미안해 오늘까지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해 말하며 더 이상 나도 기운 빼기 싫어 마무리 지어버린다. 




나와 딸은 후다닥 먹고 일어서고 다음은 남편이 먹고 사라진다. 마지막은 항상 우리 입 짧은 진품군!! 

세월아 네가 갈래 내가 갈래 씹다 쉬다 씹다 쉬다 40분을 넘기다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중간에 명품이 와 싸우면 그땐 우리도 한소리가 나온다.

다 먹고 돌아다녀! 네 하고 대답하면 좋으련만 그럴 리가 있는가 아이는 동생 탓을 하며 쏘아 댄다. 

난 그러고 싶은데 명품이 가 시비를 걸잖아! 오늘은 날이 좋지 못했다. 아니 요즘 너무 말대답을 따박따박 한 여파가 오늘 결실을 맺었다. 넌 항상 그게 문제야. 아빠가 그만 돌아다니고 먹으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한 번이 없어. 그리고 지금 한 시간이 되도록 먹는 게 말이 되니? 얼른 먹고 일어나야지. 




진품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먹기 싫은 밥에 혼까지 나니까 이해는 가지만 엄마인 나도 도와줄 수가 없다. 식사 예절은 고사하고 훈육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을 탓하는 건 꼭 고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다 먹지 않는 걸 치워버리고 돌아서는데 아이는 방에서 또 이거 저거 블록들을 가지고 어질르고 있다. 




진품아 엄마가 다이소에서 싸구려 블록 사 오지 말랬잖아. 집에 이런 게 많은데 또 사 오면 어쩌니 심지어 넌 상자도 안 버리고 가지고 있으면 방인지 쓰레기장인지 알 수가 없겠다. 제발 좀 사 오지 말라고 말하는 찰나 아이 입에서 나온 말 "아 진짜 오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하면서 눈물이 뚝뚝뚝....




그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뿔싸 오늘은 잔소리 말고 잘했다 말하라고 했는데 내가 잔소리를 2절까지 했구나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하다. 

그래 오늘 되는 일이 뭐가 없었는지 말해봐. 솔직히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마음이 쿵쾅쿵쾅 거렸다.




첫 번째로 학교가방이 너무 무거웠어.
두 번째로 오늘 4교시인데 5교시를 해서 화가 났어. 엄마가 분명 오늘 4교시라고 했잖아.
 근데 왜 5교시인 거야. 



황당해서 스톱을 외쳤다. 

가방에 책과 물티슈 물통 무거울 수 있다. 그걸 교문 앞까지 들어다 줬고 교문에서 교실까지 5분 걸어갔을 텐데 그것도 힘든 건 네가 너무 안 먹기 때문이야. 어쩔 수가 없어 그리고 첫날 수업 시간은 엄마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 너에게 5교시가 길었을지 몰라 하지만 학교에서 그 정도는 수업은 이제 할 수 있는 나이기 때문에 정해진 거야. 




진품이는 서러웠다. 

밥도 싫고 늘 하던 말을 했을 뿐인데 변명과 말대답이라고 혼이 났으니 말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한 숨 지으며 지내온 날들을 고쳐주고 싶었다. 아이와 긴 이야기 끝에 다이소에서 파는 싸구려 블록들은 이제 그만 사고 있는 것들도 잘 정리해서 가지고 있자고 했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대신에 엄마와 진품이 가 정했던 약속 중에 하루 독서 30분과 영어 듣기 30분을 꼭 지키기로 했으니 2학년부터는 다시 시작하자. 어렵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다독였고 마음이 풀리면 나와서 씻자고 하고 그냥 두고 나왔다. 




문을 열고 나왔더니 눈치 빠른 명품이는 거실을 싹 정리하고 씻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9시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한숨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이를 씻기고 영어동요를 듣고 싶다고 해서 틀어주고 나도 설거지를 넣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사이 진품이 가 나와서 씻고 머리를 말리고 옷 입는 걸 도와주니 마음이 풀렸는지 책 몇 분 읽어야 하냐고 하곤 자리에 앉는다. 




명품이 잘 준비를 도와주며 책을 읽어줬다. 책 읽기를 끝낸 진품이는 영어 듣기 시간인걸 알지만 쓱 얼굴을 내밀며 엄마가 읽어주는 책이 듣고 싶단다. 속에선 집중 듣기 언제 하나 욱 올라오지만 그래! 그거 오늘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에 같이 듣고 잘 준비하자고 하고 신나게 또 읽어주고 자라고 하고 나왔다. 





밖에서 꼼질꼼질 내일 가져갈 준비물을 챙기고 있는 사이 아이는 곁에 와서 책가방에 넣을걸 찾아다 준다. 준비성 있는 아이 아니랄까 봐 연필로 본인이 체크하며 그냥 써도 되는 것과 구매하는 것까지 알려준다. 

다시 잘 준비를 봐주고 오늘 하루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렇게 모질게 했어야 했나 아이는 왜 매번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가 생각에 잠긴다. 




긴 생각도 사치구나 핸드폰에 날짜가 내일 진품이 생일을 알려준다. 그래 8년 전 이 시간 진통하고 있을 때인데 쓴웃음 나왔다. 고생해서 낳아줬더니 잘 커줬네 엄마 속도 상하게 하고 장보기 어플을 켜서 소고기와 미역 먹고 싶다는 치즈까지 담고 결제를 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밤 12시가 넘었는데 마음이 참 찜찜하다. 아이를 위해서 열심히 보낸 하루 중 따스한 말은 얼마나 했는지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도 가끔은 너의 말에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상처를 받기도 한단다.
내일 하루 너에게 더 사랑을 쏟아 볼게
나는
엄마니까
사랑한다 아들아
너의 9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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