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로소로 Feb 25. 2023

우아한 백조 같은 카페사장님

그 자리 머물다




곱게 빗은 머리카락 깨끗하고 단정하게 고무줄로 질끈 묶고 화장을 한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올까 두려운 날도 3년이 넘어가니 동네 점빵처럼 누가 오든 활짝 환영인사를 건넬 수 있는 넉살이 생겼다. 카페를 하면 좋은 점은 다양한 사람들이 짧게 스쳐 지나가며 인생을 흘리고 사장은 눈으로 주워 담는다.



학생들의 싱그러움과 연인의 풋풋함 모녀지간의 살뜰함 모자지간의 스위트함 그리고 적당하지 않은 사이의 애정 돋는 매너까지 말없이 지켜보는 건 주인만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일일드라마이다.




카페 초장기는 님이 언제 오실까 미어캣 마냥 서서 통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그리워했다. 그리운 님은 날씨도 많이 탔고 요일과 상관없이 오셨다 가셨다. 휘돌아 친 3년 짬밥이 되자 그리움에 사무쳐 늘 챙기는 물건은 블루투스와 노트북 그리고 오랜 연인을 기다리듯 책도 함께하게 되었다.



행여 더러움에 발길을 돌릴까 베이킹을 한바탕 하고 난 뒤 쌓여있는 설거지 그릇은 한숨 몰아쉴 틈도 없이 커피잔과 디저트 접시에 뒤엉켜 깨질까 바로 해치워야 했다.




사회 초년생들은 나를 참 부러워했다. 힘겹게 하루를 해치우고 여유롭게 연차나 주말에 나와서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고 조용한 클래식이 흐르며 정갈한 꽁지머리에 리넨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향기와 부드러운 치즈케이크를 내어주고 총총 사라지는 여사장을 말이다.



귓가에 그들의 속삭임이 들린다. 나도 여유롭게 이런 거 하나 차려서 유유자적 내어주고 책도 보면서 있고 싶어. 카모메식당처럼 말이야 손님 한 명이 와도 따스함이 머물다 가는 그런 동네 작은 디저트카페 나중에 꼭 차리고 싶어.   

그 소박하고 단단함 꿈속에서 카페사장은 발갈퀴를 얼마나 허부적 거리며 저어가는지 그녀들은 모를 것이다. 아니 몰랐으면 좋겠다. 마음속에 그런 따스한 꿈 하나 품고 살아가는 게 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하니까.





엄마와 너무 다정해 보여요. 저는 카페를 하지만 이렇게 엄마와 지내는 여유를 못 가졌네요.
아빠랑 오셨어요? 너무 좋으시겠다. 맛있는 걸로 드시고 가세요. 딸이랑 오붓하게 자주 못 나오시잖아요.
남자 친구랑 정말 잘 어울려요. 젊음이 참 좋네요. 많이 다니고 추억 만들어요.
긴 웨이브 머리가 참 이뻐요. 일하느라 싹둑 잘랐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긴 머리 보니까 설레네요.
아이가 잘 웃고 밝네요. 저도 아이가 집에 있는데 금방 커서 아쉽더라고요. 힘들어도 예뻐요 이때가.



커피와 디저트 만을 내어줬다면 지금은 한마디 덧 붙인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닌 것을 알아차리곤 위로와 기쁨이 되었는지 하나같이 활짝 웃어 주시며 농담도 건네어주셨다. 아주 가끔은 골든벨처럼 디저트를 이거 저거 추가로 포장해 가시는 손님도 계신다. 아마 프랜차이즈와 다른 따스함은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행여 이 글을 읽고 할 만하겠다 느끼실까 봐. 절대 동종업계가 생길까 두려움의 차단은 아니니 곡해 없으시길 바란다. 디저트의 양면성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달콤함 이면에 쌉쌀함 또는 살이 찌면 빼야 하는 피 튀기며 노력한다는 것을 우아한 백조 같은 사장님 발아래는 빠져 죽지 않으려고 모양 빠지게 열심히 허우적 거린다.



상상속 우아한 카페사장                                        현실속 카페사장님





예쁜 앞치마 두르고 오픈시간에 맞춰 우아한 사장님 노릇을 기대했다면 노노노 현실은 어느 식당과 같다는 걸 고무장갑을 껴도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으니 손가락이 찢어진다. 닿을 때 아픔은 입병보다 쓰라리고 계속 손을 씻다 보니 낫지도 않고 라텍스 장갑 속 미세가루 때문인지 손은 더욱 건조해 할머니다.



종종 특별한 손님들 덕분에 마음이 점점 단단해지고 움츠려드는 일이 있어서 밖에서 외식을 할 때 정말 못 먹을 정도가 아니면 웬만하면 불평을 하지 않고 먹는다. 특별한 손님을 풀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 레모네이드를 주문하여 드렸는데 왜 레모네이드가 새콤하고 달콤하냐고 나에게 불평을 하였다.
( 원래 레모네이드가 시고 달콤하지 않으면 무슨 맛이 나야 하는지 의문이다.)
* 매장 앞에 차 두대를 주차하고 들어온 그녀들은 아메리카노 4잔을 시키고 본인들이 사 온 케이크를 꺼냈다.
(죄송하다며 일부러 네이버보고 찾아왔단다. 댓글테러 한다는 경고인가 한 시간 반을 놀다 테이크아웃해 가셨다. )

* 매장이 길모퉁이라 주차금지 구역인데 극구 주차하시고 접촉사고 났다며 CCTV를 요구하여 거절했더니
경찰에 신고하면 보여 줄 거냐는 부탁 같은 협박을 하여 CCTV는 내돈내산이라 보여줄 의무가 없다 하였다.
(심지어 카페 고객이 아닌 불법주정차하신 분이다. 이런 일은 한 달에 한번 꼴로 많다)       
* 인증샷을 남기다 옆테이블 손님 일으켜 세우시면서 좀 피해 달라고 한 분은 정말 민망함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있다.( 그 용기 어디서 사야 하나요..?)          




애교스러운 것들만 적었고 마음이 이미 풀려 지금은 아무렇지 않지만 속상할 때가 가끔 있다. 우리 매장에는 멀티탭 가져와 전동킥보드 충전해 가시는 분은 없어서 다행인가 싶다. 지금도 찰칵찰칵 인증샷에 여념이 없으시다 젊어 한때지 나는 그런 에너지가 없습니다.



블루투스를 안 가져와 노트북 타닥타닥 글 하나 발행하는 이 정도 기쁨의 호사가 참으로 행복하다. 백조같이 우아한 카페사장의 기쁨과 슬픔 절망까지 안 가길 바라며 멋진 3월을 꿈꿔본다.   
작가의 이전글 시크릿_내가 원한게 아니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