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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Apr 03. 2023

엄마의 도너츠




어린 시절 나는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말라서 어머니의 근심과 걱정거리였는데 조금이라도 살을 찌워 보시겠다고 아침밥상은 항상 갓 지은 밥과 국을 함께 내어 주셨다. 당시에는 당연했던 일들이라 다들 평범하게 먹고 사는구나 감사한 마음을 느끼지 못한 채 자랐는데 막상 내가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안 먹는 아이에게 매일 따뜻한 밥상을 내어준다는 건 단언컨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버지의 변변치 않는 직업 때문에 인천에서 저 멀리 경남 양산까지 장거리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 조그마한 마을엔 다섯 가구가 살 정도로 아담한 마을이어서 변변하게 갖추고 있는 것들이 없었다. 

거기서 규모가 작은 카센터를 차려서 하셨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거들어 푼돈이라도 벌어 보시려고 기사식당을 운영하셨다. 




지금처럼 배달 음식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5일 장이나 나가야 기름에 튀긴 맛있는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입이 짧은 나였지만 한 달에 두어 번 그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지 달력에 동그라미 치고 장에 꼭 데리고 가달라고 어머니를 졸라 댔다.           



유난하게 잔병치레가 많아 약이 듣지 않을 때면 1시간 거리에 있는 내과를 찾아가서 진료를 보러 갔었는데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입맛 없어하는 나를 위해서 큰 시내에 온 기념이라며 롯데리아에 데리고 들어가서 닭다리 한 조각과 콜라 콘샐러드 세트를 사주시곤 하셨다. 

어린 마음에 아파서 힘들게 버스 타고 나오는 것보다 시내까지 와서 치료도 하고 엄마와 단둘이 구경도 실컷 하며 무엇보다 맛있는 바로 튀겨낸 닭다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었다.           




동생이 크면서 집에 혼자 있지 않으려고 하자 어머니와 단둘이 나가는 외출이 쉽지 않게 되었고 나도 간간히 먹던 별미를 먹지 못하게 되어서 심술보가 부풀었던 날에는 유난스럽게 동생에게 시비를 걸고 싸우게 되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도마에 밀가루를 뿌리고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얇게 밀었다.           

직사각형(3cm x5cm)으로 잘라 반으로 접어 가위로 가운데에 칼집을 내어주고 양쪽 윗부분을 가운데 칼집 부분에 집어넣고 뒤집으면서 꼬인 모양을 만들었다.        


   

기름이 보글보글 끓으면 약 불로 줄여서 반죽을 기름 속에 퐁당퐁당 서로 달라붙지 않게 담갔다. 어느 정도 튀겨지면 연한 갈색빛이 돌 때가 가장 바삭하고 맛있는데 그냥도 맛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시럽에 두어 번 묻히고 통깨를 뿌려 우리들에게 주셨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타래과를 손과 볼에 묻는 것도 모르고 동생과 나는 맛있게 먹었다.                





동생과 내가 맛있게 먹기 시작하자 자신감이 생기셔서 어머니는 간식으로 고구마스틱, 쑥버무리, 고구마 맛탕 도너츠 믹스로 빵을 만들어 주셨다. 그중에서 동생과 내가 제일 좋아했던 간식은 도너츠었다.           

그 시절 변변한 놀잇감도 없고 티브이도 잘 나오지 않는 시골에 살았던 때라 동생과 나는 우리도 만들겠다고 떼를 쓰면 엄마는 반죽을 밀대로 얇게 밀대로 밀어서 우리에게 건네주셨다.



건네받은 반죽은 큰 컵과 소주잔을 이용해서 구멍을 뚫어 주어야 하는데 동생과 나는 소주잔으로 중간을 정확하게 뚫는 게 쉽지 않아서 모양이 들쑥날쑥 만들었다. 

개똥이 굴러가도 행복한 그 나이에 손에 반죽이 묻으면 묻은데로 모양이 삐뚤 하면 삐뚤은데로 더 좋아서 동생과 나는 까르르 웃고 자투리 반죽은 과일모양 동물모양 도넛을 만들며 그 시간을 즐겼다.                




만들어 놓은 반죽은 팬에 기름이 팔팔 끓어오르면 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넣었고 각각의 도넛들이 노릇노릇 갈색을 띠면서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준비해 두었던 커다란 쟁반에 날짜 지난 달력을 가져오셔서 북 찢어서 깔았고 한껏 머금은 기름과 도넛의 뜨거운 열기를 식혔다. 

갓 기름에 튀겨진 도너츠 향이 어찌나 고소하고 색은 맛깔난지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어머니는 마법 봉을 휘두르는 것처럼 하얗고 뽀얀 설탕 가루를 솔솔 뿌려 주셨다.        

동생과 나는 부드러운 도너츠와 시원한 우유를 곁들여 마시면서 서로의 우유수염을 보며 까르르 또 좋아서 웃는 일이 많았다.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어린 딸은 눈과 마음으로 그 정성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으는 기쁨도 맛보고 취미로 베이킹 클래스도 다니면서 실력을 발휘했다.    

만들어 오는 디저트를 다 맛있게 드셔 주셨고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어렸을 때 식당을 하면서도 우리에게 손수 간식을 만들어 주시면서 얼마나 기뻤을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제일 맛있게 드셨던 디저트는 오렌지를 절여 만들었던 오렌지케이크 였는데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 흑백텔레비전 속 케이크는 무슨 맛일지 궁금했었다며 집이 가난해서 먹어보지 못해 상상 속에 맛을 그렸었는데 아마도 그 케이크는 이 맛일 거라며 구름처럼 폭신하고 달콤해서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리는 솜사탕을 상상했었다고 한다. 



결혼 후 육아에만 신경 쓰느라 디저트를 만들어 드린 지 오래되었는데 어머니께 상상 속 맛과 사랑을 다시 전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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