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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Apr 13. 2023

간사한 마음

줄까 말까





12시만 되면 핸드폰에 학교 e-알림이 쉴 새 없이 온다. 요즘 들어서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사업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항상 패스패스 해당사항 없음으로 보다가 눈에 들어온 알림에 시선이 멈췄다.


저소득층 자녀 외국어교육 지원사업 
추가지원자 모집
영어마을 정규프로그램 & 원어민 1:1 화상영어 수업


 

영어마을 프로그램인데 추가 모집을 한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교육열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차상위만 지원된다고 생각해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중위소득도 가능하다는 깨알 문구와 취학 전 아동까지 수업받을 수 있다는 말에 밑져야 본전이다 생각하고 구청으로 접수하러 갔다. 



조심스럽게 취학 전 아이도 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가능하다며 건보료 4인기준만 본다고 했다. 합격 유무는 언제 알 수 있냐고 물어보니 추가라서 선착순으로 받고 있다며 다음 주에 확정 문자 갈 거예요. 

화상영어는 신청자가 많지 않아서 둘 다 가능하니까 걱정 마세요 다정스럽게 안내해 줬다. 





쉬는 날 구청시간에 맞춰서 온 보람이 있구나 기분 좋게 건물을 나왔다. 일도 잘 처리가 되었으니 오랜만에 서브웨이 샌드위치나 사가야겠군 룰루랄라 즐거운 감정이 안개처럼 사라지며 우울한 감정이 훅 하고 치고 올라왔다. 


중위소득 … … … 중위소득 … … … 



에이씨! 중의소득 안 받고 싶다. 대상자 아니네요 라는 말이 더 기쁠뻔했어. 우리 집도 건보료 많이 내고 싶다고!! 샌드위치를 포장해서 나와서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바닥을 향해 내려간 고개는 다시 올라올 기미가 안보였다. 



그 순간 띵똥 인스타 메시지가 울렸다. 소로소로 작가님 인스타였구나 너무 반가워요! 친하게 지내는 남팁작가님이 팔로워 하면서 메시지를 남겼다. 

왓!!!!! 이거 어쩌지... 화들짝. 

정신이 번쩍~ 

인스타는 내 기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오랜 지인들이 보고 있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위해서 오픈하지 않았는데 작가님 덕분에 정신이 바싹 차려지면서 후다닥 지웠다. 



남팁작가님 미안해요.
작가님 댓글 지웠어요. 가족 지인들 모르게 활동하고 싶어요(욕도 쓰고 싶고요)
소로소로 작가님 몰랐어요. 어떻게 해요?
제가 지웠어요 걱정 마세요 ^^;; 




찰나의 순간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랬다. 원어민 1:1 화상영어 수업은 내가 간절하게 바랬는데 잊고 있었다.

진품이가 작년 1:5 단체 화상영어를 한 적이 있었는데 수줍음과 완벽성향이 강해서 25만 원을 내고 들었던 수업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울화통이 터져서 "너 다 아는 거잖아 이거 왜 말 안 해."

"이게 얼마짜리 수업인데 말을 안 하는 거야!" 줌 수업에 그 날것이 들어갔다는 걸 나중에 알고 얼마나 쪽팔렸는지 말해 무엇할까. 

엄마 나는 1:1은 하는데 단체로 하는 건 안 할래.

끙.... (1:1 금액을 알고 하는 소리인가 아직 너의 가성비는 그만큼이 아니야 아들아)



두 번 다시 줌 수업은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했지만 엄마 욕심에 1:1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더욱이 친구 중에 레드펜 선생님이 있다. 나에게 항상 진품이가 똑똑한데 도도새를 적극 권하며 4년 하면 기계도 무상이고 평생콘텐츠를 가지는데 왜 안 하냐고 안타까워서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친한 친구지만 400만 원이 넘는 돈을 권하다니 더구나 내 형편을 알면서 매번 패드 수업을 권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친구에게 그거 우리 애 수준이랑 안 맞아 나는 그리고 패드 학습은 아닌 거 같아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엄마 입장에서 아이가 똑똑하다고 칭찬해 주는데 돈 때문에 못 해줄 때 마음이 좋을 리 없었고 가끔 울음이 툭 터졌다. 



그때부터 영알못엄마는 아이에게 음원과 책을 공급해 주고 듣기를 채워주며 패드수업 할 돈 모아서 나중에 원어민 화상수업을 꼭 해주리라 다짐했다. 일 년 만에 그 원하던 바가 공짜로 이루어졌다.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온다. 네가 간절하게 원해서 내가 진품명품이 까지 할 수 있게 들어줬거늘 너는 어찌하여 가진 것에 기뻐할 줄 모르고 말도 안 되는 것들로 불평불만을 늘어놓느냐.




정신을 차리고 차를 몰아 집으로 향하는 길은 찬란했다. 벚꽃은 더없이 아름다워서 이 행복도 주시는구나 느끼는 여유까지 선사해 주었다.





띵똥 학교 e-알림이 울린다. 방과후학교 수강권 지원액이 100만 원으로 확대 지원됩니다. 대상 가정에서는 참고하시어 방과 후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내 다리는 또 힘차게 동사무소로 향했다.


조회할 게 있다며 신분증을 요구하셨고 차량 cc 구입 연도를 물어보셨다.
23년도 구입했고요. ( 표정이 변하신다. 뭘 잘 못했나?) 
cc는 제가 모르는데 남편에게 물어봐서 대답해 드릴게요. (통화 중...) 3500cc 라고 하네요.
음... 대상자가 아니세요.
건보료는 대상자던데요라고 물어보자. 
차량이 2500cc 이하 가능하다고 대답이 돌아왔다.
아..... 얼마 전에 바꿨는데 안되는군요. 민망함에 신분증을 챙겨서 나왔다.




방과후학교 100만 원이 날아간 내 기분은 기뻐야 했는데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한 달 전에 신청했으면 되었을 텐데..... 

말                                          

간사한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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