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치료를 하느라 3주 만에 새벽 수영을 하고 왔다. 체력은 떨어졌지만 왜 이렇게 새벽에 수영을 하러 나서는걸 보아 솔직히 말하면 약간 중독자 같다. 빠진다고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데 어째서 5시 20분이면 눈이 저절로 떠지고 심지어 못 일어날까 봐 중간중간에 깨는 걸 보면 나조차도 이상하다. 어렸을 때 비실했던 몸으로 개근상 한번 못 받은 게 한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상쾌한 기분으로 아이들을 깨우고 커피를 한잔 내리고 베이글을 굽는다. 여기까지 보면 나긋나긋 유럽식 엄마스타일이지만 정신 똑띠 차리고 일어나는 아이를 마주하려면 3번 이상은 나긋나긋 보이스가 재가동되어야 한다. 둘째와 달리 겨우 일어난 첫째가 손가락이 아프다며 징징 모드를 발사한다. 워낙에 엄살이 심한 터라 어 그래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해주고 내 할 일에 몰두했다. 20분이 흐르고 꼼질꼼질 여전한 녀석을 다그쳐봐야 아침에 서로 감정만 상할 뿐이다. 다시 물어보니 손가락이 아프다고 어제 침대에서 내려오다 살짝 꺾였는데 그 후로 아프다고 병원에 가야겠다고 한다.
하... 이제는 의사 선생님이군 혼자서 진단을 내리는 아이에게 뭐라 말하랴. 알겠으니 하교 후 돌봄에서 대기하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역시나 월요일은 이벤트가 항상 열리는구나 낮잠이란 건 이번 생엔 존재하지 않는구나 나야말로 투덜거림이 나왔다. 빨래를 한가득 세탁모드로 돌리며 오늘 계획표를 다시 세웠다. 등원시키고 빨래 널고 서평 쓰기 마지막 검토 후 발송하고 마트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아이를 데리고 와서 병원을 갔다가 다문화 수업을 가면 되겠다. 휴... 오늘도 개미일꾼이로군 중간에 브레이크 없이 이어지면 다행이다 싶다.
서평과제를 내고 잠깐 카카오톡에서 수다만 잠깐 한다는 게 30분이 호로록 흘러버렸다. 마트 가는 길에 주유를 한가득 넣어주고 룰루랄라 출발 렛츠고!! 외쳐본다. 요즘 치즈에 빠져서 종류별로 3가지를 사서 담고 며칠 있으면 파티할 일이 있으니 꽃갈비살도 카트로 샐러드 먹태 베이글 아침에 닭강정 글을 보았으니 닭강정도 한팩 카트가 뭐 술안주 느낌인데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전화기가 울려 받아보니 아이가 언제 올 거냐고 하는 말에 아뿔싸 마트에서 너무 느긋했다 싶었다. 당장에 정리하고 엄마모드로 학교로 출발한다. 아침부터 베이글 반쪽에 커피 한잔으로 돌아다니니 배가 고파서 손이 떨릴 지경이다.
아이를 만나자마자 집으로 부리나케 향했다. 물건만 후딱 넣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도저히 배가 고파서 누들면 하나 호로록 마시고 정형외과로 갔다. 새벽부터 일어나 엉덩이 붙여보지도 못하고 동동거리고 돌아다녔더니 에어컨 바람을 타고 눈꺼풀이 자꾸 내려온다. 팝잇을 만지작 거리던 아이는 엄마 자는 거냐며 나의 눈을 뒤집어 준다. 오늘따라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지 자꾸 고개는 뒤로 넘어가고 그럴 때마다 아이는 눈을 뒤집어 주신다. 이렇게 효자였나 엄마가 침이라도 흘릴까 봐 미리 바리케이드를 쳐주는 기분이다.
접수한 지 1시간이 넘어서야 진료실에 들어갔다. 보기엔 괜찮아 보이는데 아이가 아프다고 해서 왔다고 하니 의사 선생님이 정색을 하신다. 원래 인대는 잘 티가 안 난다고 아이를 믿어주셔야 한다고 하시면서 엑스레이를 찍어보겠지만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오지 않는다고 그냥 방치하고 치료 시기를 놓쳐 버리면 나중에 더 심하니까 일단 엑스레이를 찍고 보자고 하셨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 녀석 꾀병이다 생각했는데 결과는 약간 부었고 아프다고 하니 반깁스를 하자고 하신다.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했던 마음이 어찌나 미안하던지 내 치부를 들킨 것 마냥 빤히 보는 아이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아이는 정말 나 아팠어 거짓말이 아니라고 종알종알 떠들었고 믿어주는 엄마처럼 행동했다.
3주간 고생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지끈했는데 아이는 날짜를 계산하더니 여름여행 가는 날보다 더 깁스를 해야 한다는 말에 또 눈물 바람이다. 여행 가기 전에 나을 거니까 울지 마 매사가 왜 그러니 더 이상 나긋한 엄마가 아니라 짜증이 발사되었다.
집에 와서도 아픈 아이를 달래주기보다 피아노학원 축구학원이 다 꽝이구나 어떻게 집으로 픽업을 할까 까마득했다. 잠깐 졸다 아이는 구구단송을 듣는다며 뭐라 뭐라 노래를 불렀고 난 단잠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꿈속에서도 큰 병은 아니라서 감사해야 하는데 작은 일에 계획이 틀어지니 짜증이 나는구나 혼잣말이 나왔고 일어나서도 고스란히 그 감정이 아이에게 전달되었다.
돌아오는 저녁밥시간이다. 요즘 피곤하다는 이유로(두 달째) 아이에게 간단한 저녁이 제공되었다. 콩나물국에 고등어구이를 차려주자 대뜸 콩나물이 싱싱한 거 같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아... 어 그래 콩나물이 좀 그래 근데 괜찮아 다음부터 네가 끓여 먹으라고 뾰족한 말이 또 튀어나온다. 아뿔싸 그만해야 하는데 브레이크가 안 걸린다. 이 와중에 남편도 몸이 안 좋은지 나에게 짜증을 두 스푼 얹어 주셨다.
시간은 째깍째깍 9시를 향해간다. 이제 아이들이 잘 시간이구나 반성의 시간이 밀려오는 참회의 미안함. 후회 한들 하루는 다 가버렸다. 아직 안 자니까 막판 30분 훈훈하게 기억해 보자. 자기 전 기억이 그날을 마무리해서 뇌에 남는다고 했었지. 어디선가 본 책 내용을 따뜻한 생각들로 살포시 믹스해 본다.
며칠 전부터 잠자리 독서를 해줘야겠다는 강한 이끌림이 들었다. 둘째가 좋아하는 동화책을 대충 읽어준다고 생각했고 쿠팡에서 집게형 스탠드를 구매했다. 불을 끄고 동화책을 3권 읽어주자 둘째는 자동으로 잠이 들었다. 첫째는 항상 내가 자야 잠드는 스타일이라 이번엔 푸른 사자와니니 책을 집어 들었다. 줄글책을 읽으려 하지 않아서 빼든 카드 네가 읽지 않으면 어미가 읽어주마 모드로 전화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하는 첫날이 오늘이 될 줄이야. 한 챕터를 읽고 났는데 반응이 뭐 없고 눈이 꿈벅이는데 오호 듣고 있네? 동물 캐릭터가 어쩌고 질문이 나온다. 그다음 챕터를 읽고 나니 아이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항상 10시 30분쯤 겨우 잠들었는데 책 때문인지 엄마가 옆에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손가락 때문에 고단했으지 모르지만 어쨌든 곤하게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짠한 마음보다 애기때 모습이 보여 울컥한 마음이 올라왔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하나만 바라보는 너인데 어째서 좀 더 다정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자책도 들고 아프다는 말을 왜 100% 믿어주지 못했나 그런 마음들로 복잡했는데 너를 보고 있노라 모든 게 다 씻겨 나가는구나 너 역시도 엄마라는 존재를 한없이 믿어주고 의지 할 텐데 내일부터 조금 더 다정하겠노라 다짐해 본다. 솔드아웃이 되면 다시 차곡차곡 채워 넣으면 되니까. 사랑한다 아이야 너의 이름처럼 모든 좋은 일이 다 오길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