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보다 싱그러운 첫사랑, 나의 엘리오
영화 : Call Me by Your Name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주연 : 티모시 살라메, 아미 해머
줄거리 : 열일곱 소년 엘리오는 부모님과 가족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찾아온 올리버를 만나고, 그 여름의 모든 것이 사랑이 되었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풍경과 감성이 너무도 아름답다. 포스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색감과 영상미가 기대한 만큼 담겨 있다.
첫 만남
엘리오는 올리버가 없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문득 올리버가 '이따 봐'라고 말할 때 무례한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다른 가족들은 잘 못 느끼겠다고 말하지만 올리버가 맘에 들지 않는 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엘리오의 사랑은 낯섦이다. 처음 느껴보는 그래서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 엘리오는 올리버를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다른 느낌이 들고, 사람들이 말하는 그에 대한 평가와 그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는 일이 거슬린다. 올리버는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착각하는 건 아닐지 쉽게 결정하지도 못한다.
첫사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는 상처를 받아본 후에야 느낀다. 때문에 엘리오의 첫사랑이 더욱 잔인하게 느껴졌다. 왜냐면 올리버에게 엘리오는 첫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주로 엘리오를 따라간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스치는 손길에도, 가벼운 말 한마디에도, 지나는 뒷모습에도 밤잠을 못 이룬다. 모든 것이 처음인 엘리오에겐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상대가 나를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절제할 수 있는 올리버를 보는 것이 매 순간 상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여름
어쩌면 여름은 첫사랑으로 만들어진 계절일지도 모른다. 태양은 뜨겁고 그 와중에 초록은 온통 살아난다. 햇살로 사람들을 뛰쳐나오지만 작은 움직임에도 숨을 헉헉 댄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첫사랑을 앓는 엘리오의 그 해 여름에 초대된다. 관객들은 금세 그들의 계절에 흠뻑 젖어버린다. 어떤 계산도 할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숨길 수 없는 마음을 가진다는 게 질투가 날만큼 예쁜 순간으로 보인다. 엘리오에 취해 '적당히'가 가능한 올리버를 보는 일이 상처가 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숨겨진 곳에 난 상처를 다시 다시 숨기기 바쁠 올리버가 측은하기도 했다.
'엘리오', '올리버'
올리버는 엘리오에서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난 내 이름으로 널 불러줄게.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상대를 부르는 일, 상대를 나의 일부처럼 느끼는 일이기에 로맨틱하기도 하고 서로를 감출 수 있는 암호가 될 수도 있는 은밀한 일이기도 하다.
둘만이 떠난 여행에서 그 이름을 마음껏 부르며 달리는 두 사람은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빠져있고 온몸으로 사랑을 만끽하는 것처럼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무언가에서 벗어나 있고 해방된 세상에 존재하는 두 사람을 보고 막연히 해피엔딩을 기대하기도 했다.
자정을 기다리던 두 사람이 너무 아름다워서 기다림이란 것의 예쁨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사력을 다한 엘리오를 보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엘리오가 올리버를 보며 어른이라서 다 괜찮고 어른이라서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진 말아줬음. 그래서 혼자 남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이제 겨울에 앉아서 무언가를 태우며 타오르는 불을 보는 엘리오에게.
재뿐이 남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것도 안 남는 것은 아니라는 걸.
그 여름이 불타는 동안 네가, '엘리오'가 만든 계절은 누구보다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과
이런 생각을 하며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우리는 빨리 나아지기 위해 우리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놓아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이미 무너져 버린단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과 시작할 때마다 그들에게 보여줄 내가 더 이상은 없어져 버리게 돼
아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어떠한 것도 느낄 수 없어지면 안 되잖니'
'우리의 마음과 몸은 오직 한 번만 주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마음은 닳아 버린단다.
그리고 우리 육체는 언젠가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을 때가 올 거란다.
더 이상 가까이 오고 싶어 하지 않을 때 말이다.
지금 당장은 슬픔이 넘치고 고통스러울 거야 그것을 놓치지 마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그 슬픔들을 그대로 느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