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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Aug 16. 2018

일본 드라마 : 5시부터 9시까지 나를 사랑한 스님

스님이 이렇게까지 매력적일 일인가?

일드 : 5시부터 9시까지 나를 사랑한 스님
일본 후지 TV 2015.10.12. ~ 2015.12.14. 10부작
각본 : 코야마 쇼타
출연 : 이시하라 사토미( 사쿠라바 준코), 야마시타 토모히사(호시카와 타카네), 후루카와 유우키(미시마 사토시), 다나카 케이(키요미야 마코토)

줄거리

 뉴욕에 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으로 영어공부를 하며 영어 강사가 된 준코, 여전히 뉴욕에 관한 정보는 꿰뚫고 있지만 정작 가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스님, 타카네는 준코에게 완전히 반해버리게 된다. 앞으로 뉴욕에서 일을 하고 싶은 준코는 당장의 결혼 생각이 없고 간절한 타카네는 준코에게 1주일만이라도 오전 5시부터 9시까지 절에서 지내며 신부수업을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1) 자유롭고 싶은 여자와 지켜야 하는 남자.

 준코의 꿈은 뉴욕에서 사는 것이다. 그녀에게 '뉴욕'이라는 곳은 동경의 공간이었던 미국이며 일본에선 누리지 못했던 자유와 꿈이다. 때문에 그녀는 영어강사까지 되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세 명의 남자. 호시카와, 미시마, 키요미야 중 호시카와를 제외한 두 남자는 준코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남자들이다. 준코에게 미시마는 그저 친구이지만 주위에서 만나보라 권할 정도로 미시마의 마음은 노골적이었고 그의 직업상 그녀와 뉴욕행이 언제든지 가능하다. 키요미야는 심지어 뉴욕에서 살다 왔으며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그녀를 뉴욕지사로 발령 보내는 데에 힘을 써줄 수도 있다.

 하지만 호시카와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절에 주지스님이 되어야 한다. 즉, 그의 일은 절을 지키는 일이다. 가업을 이어온 그의 일은 극 중에서 마치 준코의 일보다 대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누가 더 중요하다 할 수 없는 문제이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꿈과 사랑을 교환해야 함을 전제로 시작한다. 

 이는 처음 준코가 뉴욕행이 달린 시험을 앞두었을 때, 호시카와가 집안에서 정해준 약혼자와의 혼인문제, 이에 수반되는 주지스님 계승에 문제가 있을 때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2) 순수해서 지나친 남자

 타카네는 외적으로도 훌륭하며 재력도 있고 곧 주지스님이 될 테니 나름 자신의 분야에서 권력과 명예도 가진 남자 주인공이다. 우연한 사고로 만나게 된 준코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일상을 전부 소모하는 사랑을 한다. 안타깝게도 이는 준코에게도 요구된다. 드라마의 제목 '5시부터 9시까지' 타카네는 준코에게 자신의 절에서 신부수업을 받을 것을 제안한다. 이 당시 준코는 호시카와에게 마음이 있지도 않고 더군다나 중요한 시험을 앞둔 상태에서 말이다. 드라마에선 로맨틱으로 포장된 감금과 스토킹이 타카네의 진심으로 표현한다. 매 순간, 모든 기회를 정성스럽게 준비한다고 해야 할지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조금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남자 주인공에게 정이든 시청자들에겐 그의 행동이 귀여워 보일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기도 하다.

3) 아름다운 신부. 신부의 조건

 요즘 세상에 '신부수업'이라니. 이 말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스님'과 드라마에서 번역된 '스님'의 개념이 다를 듯하다. 어쨌든 드라마에서 말하는 스님인 타카네는 지금 살고 있는 절 혹은 신사를 계승해야 할 임무를 지닌 사람이다. 그는 당연스레 준코에게 신부수업을 제안하며 자신의 신부 자리에 앉게 된 것으 축하한다. 그녀의 동의 없이 말이다. 배우는 거라곤 아침에 일어나 청소하고 빨래하고 요리하는 게 전부인 신부수업을.

 최근에 본 이시하라 사토미의 작품 중에선 '준코'의 역할은 평범하지 않았나 싶다.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 걸 에츠코>에서나 <디어 시스터>, 특히 <실연 쇼콜라티에>에서 볼 수 있었던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캐릭터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더욱이 호시카와의 정혼자와 비교해서 설명하자면 '거침없는', '당당한'이 붙겠지만 사실 어느 정도 신데렐라이며 어느 정도 왕자를 기다리는 캐릭터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난 내 삶을 사랑에 얼마나 할애하고 있을까? 호시카와의 경우는 준코를 만나 온통 처음 하는 것 투성이었으니 더 서툴고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일상을 지내고 그런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서로의 존재만으로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극 중 두 주인공처럼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지 않았어도 우린 너무 다르고 그것을 특별히 여긴다. 그러니 서로를 만나러 가는 일도 서로를 위하는 일도 어느 노력도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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