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것은 가볍게, 가벼운 것은 무겁게.
밤새 잠을 설치고 처음 가는 길을 찾아다니고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고 바라던 것은 이루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아, 하루가 가기도 전에 온통 지쳐있었다. 종일 밥도 못 먹었는데 먹고 싶기보단 쉬고 싶었고 집은 가기 싫었다. 마침 보고 싶었던 <일일시호일>이 개봉해서 부랴부랴 예매를 하고 영화관으로 갔다.
영화관을 찾은 이유는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어떤 연락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혼자 있고 싶은 마음, 실은 좀 울고 싶은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슬프지 않았다.
일일시호일 : 매일매일이 좋은 날.
줄거리는...
솔직히 노리코가 주인공이고 다도에 관한 영화라는 것은 알겠지만 줄거리라고 할 만한 이야기는 없다. 영화를 이끄는 이야기가 없다는 뜻이다. 사건이라고 해봤자 노리코가 다도를 배우는 사건이 전부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난 영화에 아주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야기가 없는 데도 이런 울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영화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 아닌가.
아직 무엇이라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일본 영화에서 만드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가 있다. 난 주로 그런 분위기에서 치유를 받곤 했다. 이 영화도 그랬다.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라고 걸어둔 이 영화는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이 힐링이 되는 영화다. 나란히 앉아서 손수건을 이렇게 접었다가 폈다가 털고, 찻잔이나 도구들을 닦을 때에도 히라가나의 어느 글자의 모양을 따서 닦는다. 다다미 위를 걷는 법도 한 칸에 6걸음으로 정해져 있다. 굳이 불필요한 행동을 하고 그것이 규칙으로 정해져 있지만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닌 익은대로 하는 것이 다도이다. 여기서 영화는 다도와 삶의 연결점을 이어나간다.
노리코는 다도를 배울 때 마치 자신이 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어느 것 하나 손에 익은 대로 하는 것이 없다.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다케다 선생님은 그저 다도는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저 그런 것.
물동이를 드는 노리코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무거운 것은 가볍게 들고 가벼운 것은 무겁게 들어야 한다.'
그렇게 노리코는 어느 순간 다도라는 것, '일일시호일'의 의미를 깨닫는다.
영화에서 말하는 다도는 마치 노인이 터득한 삶과 같다. 비효율적이라도 전통의 가치를 지키며 이어지는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은 지나가게 두면 되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어느 순간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삶에 이다지도 초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영화에서 말하는 삶, 다도에 대한 태도는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이러한 깊은 깨달음은 지금은 얻을 수 없는 것일 거란 생각도 들었다.
나의 삶도 다도처럼 다 우러나고서도 또 다른 시작을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