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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Nov 11. 2018

오늘 네가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사람

그라폴리오 - 집시

첫 데이트를 하던 날.

우리는 만 보를 넘게 걸었다.


우선은 집이 서로 멀었기 때문에 중간쯤 되는 지점인 종로에서 만났다. 종로는 내가 잘 아는 곳이기도 했다.


8시쯤 만날 수 있냐는 그의 말에 너무 이르다고 타협한 시간이 9시 반쯤이었다. 주말인데도 눈을 뜨자마자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종각과 종로를 걸었다. 카페를 갔고 서로의 첫인상이라던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던가, 잠버릇, 습관, 취향, 이상형들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했다.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서도 한참을 고르다 메뉴를 정하고서는 카페를 나서자마자 보인 식당에 들어갔다.


 내 즉흥적인 성향을 자꾸 들켜 난 부끄러워했고 그는 그런 내가 재미있다고 웃었다. 그를 웃게 한 것이 내 성향 때문인지 내 부끄러움 때문인지 몰라 조심스러웠지만 나도 저절로 따라 웃었다 


 씨네큐브를 갔다. 오래전부터 개봉을 기다린 영화가 있었는데 혼자 영화를 보러 서울까지 잘 나가 지지 않았었다. 그의 취향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흔쾌히 나를 따라왔다. 영화는 예상했던 만큼 좋았고 그에게는 생소한 영화였지만 나에게 맞춰 열심히 영화를 되짚어가는 그를 가만히 보는 일이 좋았다.


 여름의 더위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거리에 오래 서있지 못하고 곧장 교보문고로 들어갔다. 우리는 서로 읽어본 책들과 표지가 이쁜 책들을 서로 보여주며 또 한참을 걸었고 그는 내가 늘어놓는 책 제목들을 들으며 신기해했다. 사실 말한 것이 거의 전부인데 그는 일부처럼 느끼는 듯했다.


 다시 우리는 목이 말라졌고 종로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인사동을 따라 올라갔다. 종로가 처음이라던 그는 그날 하루 종일 종로와 광화문 인사동을 누비며 서울구경을 했다. 종일 거리의 간판을 보며 가본 적이 있는 곳들과 집 근처에 체인점이 있는 곳들 음식이 매웠던 곳, 난 매운 것을 못 먹지만 좋아한다는 말들 그리고 저곳은 음식이 양이 적다던가 인생 빙수를 먹은 곳들을 찾아내 말했다. 


 이내 밤이 되었다.


 술을 못하는 그는 술을 좋아하는 나를 따라 치맥을 제안했고 술을 좋아하는 나는 술을 못하는 그를 위해 맥주와 콜라를 나란히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다가.


 "잠시만. 나 지금 주고 싶은 게 있어."


 이 말만 남기고 밖으로 나가버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난 덩그러니 치킨집에 앉아 있었다.


 멀뚱멀뚱...


잘 튀겨진 치킨과 함께 그가 돌아왔다. 내 손만 한 작은 꽃다발과 함께.


"우와...."


꽃 선물은 많이 받아본 적 없어서 반응이 어색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잠시 동안 거리를 헤매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지금 내가 너무 행복해서 오늘 네가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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