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니 Nov 27. 2018

내가 심어준 나.

청량감.


 하늘색 프릴이 달린 점프슈트를 입었다.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게 잘 어울릴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온 사방에 옷을 꺼내 놓은 걸 보고 언니는 괜히 '아무거나 입어' 툭 던졌다.


 하늘색 점프슈트는 고르고 고른 옷이었다. 활동성도 좋고 색도 밝고 더운 날 땀이 나도 티가 많이 나지 않을 것이며 시원할 것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시간에 옷과 립스틱 블러셔까지 고르고 고른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서울에서 9시 약속이었기 때문에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나가기 위해 또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피곤해 계속 졸았다. 그는 전처럼 일찍이 출발해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약속시간을 지켰는데도 늦은 기분이라 가는 내내 초조해하다가 다시 졸았다. 


 장소에 미리 나와있다던 그를 한참을 찾아 헤맸다. 그는 뜬금없는 건물 안에서 나타났다. 민소매 체육복 차림으로.


 "왜 거기서 나와?" 하고 물었다.


 "너무 더워서 옷 갈아입었어..."


 말하는 그의 말 끝이 시무룩했다. 어떤 옷을 입고 왔는지는 몰라도 나만 너무 과하게 신경을 쓴 거 같아 당황했다.


 내 지난밤의 고민을 아는지 그는 연신 예쁘다, 옷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났다.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쉬웠다. 


 "이 옷은 어떤 콘셉트야?"


 뜬금없이 그가 물었다. 콘셉트? 그런 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정말 생각한 적 없는데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청량함?"


 그는 아마도 귀여움이나 예쁜 과 같은 흔한 형용사를 떠올리고 있었는지 내 말에 크게 웃었다. "맞아 포카리스웨트 같아." 뜻밖의 빅재미 었는지 그는 꽤 즐겁게 웃었다. 나도 쑥스럽기도 하여 괜히 그만 웃으라 타박했지만 곧 따라 웃었다.


 그 후에도 그는 나를 보며 '청량하다'는 형용사를 떠올리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그날 그에게 나의 청량함을 깊게 심어주었나 보다.. 하고 내심 흐뭇했다.


 그 날 저녁. 날이 그리 시원해지지는 않았지만 뜨거운 해가 가시자 그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러더니 파란색 셔츠를 입고 다시 나타나서는 쑥스럽게 웃었다. 이제 곧 헤어질 때 가 다 되었는데 그저 그 체육복 위에 옷을 걸치기만 하면 되는데 화장실까지 가서 갈아입고 와서는.


 "우리 원래 오늘 커플 룩일 뻔했는데."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의 매너와 배려. 쑥스러울 때마다 만지작 대는 오른뺨과 머리칼. 살짝 눈을 피하며 웃는 얼굴.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네가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