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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Nov 01. 2018

편지 써줄 수 있어?

누군가를 울릴 수 있는 글을 쓰는 방법


 그와 연락만을 주고받다가 처음 만나기로 한 날. 1분의 여유도 없이 출발했지만 러시아워에 걸려 한참을 늦었었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나를 오래 기다를 그를 생각하니 시원한 버스 안에서도 진땀이 났다. 연신 미안하다고 하는 내게 그는.


 "그럼 내 소원 하나 들어줄래?"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동안 그는 소원을 말하는 일을 미루다가 차가 식어갈 때쯤 그는 운을 뗐다.


 "편지 써줄 수 있어?"


 응? 오늘 처음 봤는데, 편지?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제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하는데 소원이라는데 못해줄 거 있나 싶어 흔쾌히 알았다고 답했다. 물론 문제는 편지지 앞에 섰을 때였지만.


 일단 서로 알게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아 서로를 부르는 호칭 조차 민망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도 억지스러웠고 '이런 점이 좋은 거 같아' 정도의 호감을 표현하는 것도 부끄러웠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편지를 받던 그의 얼굴.

 편지 봉투가 하얘서였는지는 몰라도 환하게 웃던 얼굴, 빛이 나던 미소. 고맙다고 말하던 나지막한 목소리, 다 읽고 넣어둔 편지를 다시 꺼내던 그의 손가락과 편지를 보면서 나를 살피던 눈빛.


 바로 답장이 이어졌다. 그의 답장에는 편지에 대한 감사와 감동받았던 편지의 내용 그리고 사랑으로 변해가는 마음들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의 답장이 이어졌다. 편지를 받을 때마다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진짜 그 모습이 귀찮음을 이겼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쓰기도 했고 그를 보며 떠올린 시들을 적어 선물하기도 했다. 체육인인 그는 평소 드라마를 볼 일도 책을 읽을 일도 더더욱 시를 접할 일도 적은 사람이었다. 선물을 하면서도 관심이 없는 분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다.


 몇 번 시를 받아 든 그는 직접 내게 시를 들고 왔다. 편지와 함께.


 조금 흐트러지고 비뚤어진 그의 글씨에 시를 찾아보고 그 시를 여러 번 읽으며 종이에 옮겨 적었을 그의 진심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와 내가 아는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그 어떤 마음까지.


 글과 책과는 다소 멀던 그의 문장이 좋아지고 사랑한다는 말을 참기 힘들어지는 그 시간이 담긴 그의 편지에 난 왠지 눈물이 맺혔다.


 편지를 쓰는 일은 그저 상대에게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다짐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든 이 마음을 기억할 수 있도록. 다시 우리가 이 순간의 감정에 서있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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