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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Feb 11. 2018

두 사람의 만남

이야기의 시작


 이 이야기는 어느 날 내가 엄마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엄마가 서울에서 일하는 한 여자일 때, 아빠가 서울에서 일하는 한 남자일 때의 이야기다.

 여자는 평범한 사무직 회사원이었다. 멋을 부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요란한 것은 좋아하지 않고 속으로는 생각이 까다로운 사람이었지만 조용한 여자였다. 남자는 여자가 다니는 회사에 자주 방문하는 (아니 어쩌면 자주 방문하려는) 영업사원이었다. 남자는 그 회사를 드나들면서 회사의 대리나 과장에게 넌지시 여자에 대해 물었고 소개해 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했다고 한다.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여자는 외모가 준수한 편이었고 차림이 늘 단정했을 테니 눈에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결국 회사의 대리님은 여자에게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여자는 제일 먼저 남자의 키가 떠올랐다고 했다. 남자는 키가 작았다. 여자는 남자의 작은 키로 미루어보아 왠지 그는 속이 좁을 거 같았고 설명할 수 없이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절했다. 대리는 상황이 난처해졌다. 남자는 대리에게 계속 부탁을 했고 싫다는 여직원에게 계속 만남을 제안하기가 불편했다. 그나마 대리의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었던 것은 대리의 생각에 남자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대리가 여자에게 세 번째로 남자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여자는 드디어 알았다고 대답했다. 여자의 마음은 ‘만나볼까?’가 아니라 ‘만나고 치워버리자’였다고 했다.



 서울의 한 피자집이었다. 여자가 말하길 그 당시 서울에 피자집이 많아야 두세 군데였다고 했다. 내가 그럼 그때는 피자집이 로맨틱한 곳이냐 물었더니 그런 건 잘 모르겠다고 했다. 피자집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대리님이 있었다. 그곳에 대하여 여자가 기억하는 것은 얼마 없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여자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했다. 마침내 식사가 끝나고 여자도 모두 잘 끝이 났다고 안심을 했을 무렵. 남자는 뜻밖의 말을 했다. ‘5000원만 빌려주세요.’라고 했다. 여자는 그 말이 들리는 찰나에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고 했다. 가장 크게 고민한 것은 액수의 크기였다. 5000원이라니. 떼먹으려고 하기엔 작은 돈이고 그냥 버리기엔 큰돈이라고 했다. 여자는 대리의 팔을 찔렀다. ‘대리님이 빌려줘요.’ 대리님은 무슨 눈치를 챈 건지 아님 진짜 그랬는지 돈이 없다고 다시 여자에게 떠넘겼다. 여자는 다시 처음의 마음가짐을 떠올렸다. ‘만나고 치워버리자. 5000원. 까짓것 버리자.’ 여자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었다.


 다음날 7시 명동성당 앞. 5000원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여자는 5000원을 돌려받지 않을 마음으로 준 것이었기에 약속 장소에 나갈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그냥 사무실에 앉아서 창 밖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본 것이 생각난다고 했다. 죄책감을 만드는 날씨. 내 생각에 여자의 시작은 그 날씨였을 것이다. 말이 차가워도 마음이 모질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몇 주가 지나고 여자의 책상으로 한 통의 전화가 날아들었다. 남자였다. 그는 여자가 예상한 서론도 없이 한 번 더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다시 한번 5000원의 핑계를 댔다. 여자는 거절하지 못했고 지난 약속을 어긴 것을 따져 묻지 않는 그를 보며 죄책감이 호감으로 변해갔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는 사이까지 발전을 했고 남자는 남자에서 나의 아빠가 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아침 햇빛처럼 사라졌다. 여자는 왜 하필 5000원을 빌려 간 것인지, 명동성당 앞에서 얼마나 기다린 것인지를 물을 기회를 여러 번 놓치고 영원히 물을 수 없게 되고서야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난 대답하진 못했다. 이 로맨틱한 이야기는 내게 아빠의 인상이고 내 성격의 기원이며 우리 가족의 시작이다.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내 생에 최고의 로맨스, 최고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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