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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 Sep 29. 2021

배추가 맛있는 철



김장 무렵엔 뻣뻣하게 남은 배추 겉잎으로 전을 부친다.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많이 먹는데, 이렇게 쉬울 수가 없다. 부침가루, 찬물, 계란 하나를 넣고 묽고 걸쭉해질 때까지 섞는다. 생배추를 푹 담갔다가 빼서 기름이 차르르- 한 팬에 노릇하게 부쳐낸다.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노릇하고 달큰한 향기가 나며 익은듯 아닌듯 반투명하게 색이 변하면 채반에 옮기고 초간장에 살짝, 얌전하게 찍어서 죽죽 길게 찢은 다음 둘둘 말아서 입에 밀어넣으면 그야말로 소박한 천국이다.



초간장의 비법. 양조간장 1 : 식초 0.5, 백설탕 약간. 진간장은 좀 덜 넣고 식초 설탕 비율을 많이 해야 맛있다. 참고로 회 먹을 때도 간장은 엷게 만들어야 생선의 맛이 죽지 않는다.





++


돌 계단 틈으로 자라버린 배추.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가서, 뽑지 않고 두었다. 처음엔 문 앞 계단에 스치듯 연두색이 보였다. 늘 그랬듯이 추위에 지고 말겠지 싶어 그냥 지나고 말았는데, 연두는 여린 초록이 되었다가 결국 빳빳한 잎으로 피어났다. 시절을 모르고 자라는 것만큼 기쁘고 가쁜 것이 또 있을까. 고 좁은 틈에서도 꿈을 꾼다. 네가 나의 용기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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