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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 Oct 01. 2021

장미, 유월.

집 앞에 덩굴장미가 가득 피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많이 가난했었다. 신림동 구석 월세보다 못한 지하방에 더운 날씨가 가까워도 샤워는커녕 배수구와 화장실도 없었다. 6개월을 넘긴 사람이 없다는 고약한 집주인 아래서 몇 년을 살았으니 엄마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까. 아직도 힘들면 꿈에 집주인이 나온다고 말씀하신다. 그 집 자매보다 어렸던 나는, 같이 놀아도 언제나 공주님들의 시녀였다. 오죽하면 우울한 얼굴로 집에 돌아와 책상 밑 바퀴벌레에게 손짓하면서 인누와, 놀자.라고 했을까.


그렇게 힘들어도 여름이면 어김없이 장미가 피었다. 그게 위안이었다. 화심부터 올라오는 향기는 물론, 황홀하리만큼 붉고 고운 색깔을 한 장미 송이가 너무 예뻐서 손을 댔다가 가시에 찔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차마 꽃을 꺾진 못하고 가시만 하나 떼서 코끝에 붙이고 코뿔소 놀이를 하다 손가락에 피를 보기도 했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내게 장미는 그런 꽃이었다.


아직도 장미 덩굴을 보면 나보다 어렸을 그때의 엄마가 생각난다. 가파른 계단의 지하 셋방에서 힘들게 걸어 나와 장미가 가득 핀 주인집 정원을 보며 말했다고 했다. 뱃속의 아이에게, 아가야, 우리도 언젠간 장미 덩굴이 가득 있는 집에서 살자. 하고... 그리고 그해 6월에 태어난 아이의 탄생화는 장미였다지.


이제는 우리 집 정원에도 덩굴장미가 가득 핀다. 더 이상 아쉽지도 않은 나의 장미들. 아기를 품고 혼자 꽃을 보던 엄마는 이제 나와 손을 잡고 사계절의 정원을 걷는다. 누군가는 잠깐의 고움을 덧없다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엄마와 내게 그랬듯이, 어떤 아름다움은 또 다른 누군가의 세계를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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