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저녁형 인간? 아뇨 야간형 인간인데요

근데 아침마다 출근은 해야 해서요


아나운서 이금희 씨가 말했다. 22년 간 새벽 네다섯 시에 일어나면서 자신을 아침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침마당>을 그만두고 바로 그다음 날 9시에 일어났다고. 알고 보니 자신은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아침'월급'형 인간이었다며.

 

*출처: KBS 감성 로드다큐 <한 번쯤 멈출 수밖에> 2021.9.20.







나는 전생에 올빼미였던 것 같다.


이 말을 엄마한테 했더니 전생이 어딨냐며 혼을 낸다. (엄마는 성당에 다닌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이상하다 너 아침에 태어났는데…” (성당에는 다니지만 이상한 미신은 혼자 만든다.) 엄마는 모른다. 저녁형 인간에도 포함되지 않는, 전생을 올빼미로 살았던 야간형 인간은 밤늦게 자지 않는다. 밤을 새우고 아침의 해가 떠오르면 아침의 해를 보며 비로소 잠드는 것이다. 엄마가 밤새 진통을 겪고 아침에 내가 나왔다면, 그건 전생에 올빼미였던 나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엄마는 아침형 인간, 아빠와 나는 야간형 인간이다.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요상하게 살고 있나 궁금할 땐 고개를 들어 아빠를 참고하면 된다. 아니면 친가 친척 중 아무나를 참고 하면 된다. 나의 친할머니는 하루 종일 가만히 있다가 자정이 넘으면 집안 모든 그릇을 꺼내 찬장 정리를 시작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침형 인간이 저녁형 인간과 살면 적어도 일상의 한나절 정도(아마도 오후 시간)를 공유하게 되지만, 아침형 인간이 야간형 인간과 함께 살면 그들은 서로의 삶에서 영원히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한쪽이 잠들면 한쪽이 일어나고 다시 한쪽이 일어날 때 다른 한쪽은 잠든다. 그리고 남겨지는 것은 야간형의 게으른 삶에 대한 엄마의 경멸이다. 물론 그 경멸은 잘 전달되지 못한다. 엄마가 경멸할 때 야간형 인간은 꿈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히히.


야간형 인간이란, 특별한 제약 없이 실험 대상자를 자연의 상태로 두었을 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낮밤이 홀랑 바뀌어 버리는 사람을 말한다. 그건 이틀이면 충분하다. 이틀 뒤 그들은 이미 해 뜰 때 자고 해 지면 일어나고 있다. 정말 희한하게 밤만 되면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이 잘 되며 모든 게 다 재밌다. 이 DNA에 박힌 밤으로의 귀소 본능은 몹시 강력하여,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일을 몇 년씩 계속해도 매주 주말이 올 때마다 여지없이 밤낮이 바뀐다. 그래서 일요일 밤엔 이미 무슨 짓을 해도 일찍 잘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월요일엔 두어 시간밖에 못 잔 좀비가 되어 출근하는 일을 매주 반복하는 것이다.


야간형 인간이 회사에 출퇴근을 한다는 건 너무너무 힘든 일이다. 상상해보시라, 몸뚱이는 미국에 있으면서 혼자 한국시간에 맞춰 사는 꼴이다. 시차 적응은 항상 성공하는 듯하면서 실패한다. 월요일에 좀비가 될 때마다 출근해야 되는 내 운명을 저주하게 된다. 내 생각에 세상이 이렇게 아침형 인간들에게 맞추어 설계된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다. 이건 아침형 인간들의 음모다. (아님)





테드 강연 - 러셀 포스터 교수




아무튼 내가 올빼미든 뱀파이어든 직장에 다니는 한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에 일어나 회사에 가야 한다. (대체 세상에 정의란 존재하는가? 나는 아침형 인간들의 출근시간에 합의를 한 적이 없다.) 야간형 인간은 잠깐만 방심하면 늦게 자기 때문에 허구한 날 함정에 빠진다. 잘못하면 낮에는 출근 때문에 깨어있고 밤에는 신이 나서 깨어있다가 24시간째 깨어있는 불상사를 맞이할 수도 있다. 직장은 그냥 가도 짜증이 나는 곳이기 때문에 수면 부족 상태로 출근했다가는 지옥 같은 하루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럼 아침형 인간들의 음모로 설계된 이 매트릭스 안에서 직장인으로 고군분투하는 나, 야간형 인간에게 위험한 것들에 대해 말해보겠다.


월요일 & 화요일 밤. 경험상 한 주를 무사히 보내려면 월요일 밤과 화요일 밤이 가장 중요한 고비다. 보통 수요일부터는 누적된 피로가 상당해 밤늦게 놀 에너지는 부족하다. 하지만 주초반인 월요일과 화요일 밤은 아직 주말에 회복한 에너지도 남아 있으면서 동시에 낮에 쌓인 스트레스도 많은 상태다. 이 스트레스를 어딘가에 풀고 싶고, 바로 잠들었다 그냥 출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유혹한다. 그래서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일찍 퇴근한 경우 엄청 늦게 자고 다음 날 괴로워지는 일이 많다.


목요일 밤. 월요일 밤과 화요일 밤에 무사히 6시간 이상의 수면을 확보했는가? 그렇다면 두 번째 고비는 목요일 밤이다. 한 주간 축척된 스트레스가 피크를 찍는다. 게다가 내일이 금요일이니 피곤해도 하루만 참으면 된다는 안이한 마음이 든다. (왜 이런 생각은 밤에만 드는 건지?) 그래서 목요일 밤도 안 자기 시작하면 아침까지 안 잘 확률이 높아서 몹시 위험하다.


재택근무. 재택근무? 재택근무 진짜 좋다. 개 좋다. 재택근무 안 끝났으면 좋겠다. 재택근무 없어지면 어떻게 주 5일을 꼬박 출근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하지만 다음 날 예정된 재택근무는 야간형 인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함정에 빠트린다. 아침에 최소 8시 50분에만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출근을 찍으면 된다. 머리? 안 감아도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너무 졸린 날은, 점심을 포기하면 점심시간 1시간 동안 편안한 내 침대에서 낮잠을 잘 수 있다. 이 모든 옵션들에 취해… 재택근무 전날 잠을 안 잔다. 재택근무할 때마다 왜 이렇게 피곤한가 했네.


일요일의 커피. 사실 커피는 무조건 수면에 안 좋긴 하지만 특히 주말엔 낮과 밤이 쉽게 뒤집어지곤 하기 때문에 일요일에 커피를 잘못 마셨다간 월요일에 잠을 한숨도 못 잔 시체가 된다. 잠을 2시간 잔 시체냐 아예 못 잔 시체냐는 꽤 중요한 차이가 있다. 커피 귀신이긴 한데 일요일엔 진짜 커피 안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패드. 하. 사버렸다. 위험한 기계… 3주 전에…


브런치. 내가 이걸 밤에 왜 이렇게 열심히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돈이 나오나 뭐가 나오나.


내일 만날 직장 상사와 동료들. 내일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싶다. 그냥 출근… 출근이 제일 문제다….


이 모든 지뢰들을 한 주 동안 무사히 무시해야만 올빼미는 비로소 ‘아침 월급형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초안은 언제 썼는가? 월요일 밤… 그럼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은 무슨 요일인가? 화요일... 화요일 밤... 아이패드로… 브런치에 글 쓰며…


이번 주도 망했다. 히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