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무슨 말을 하며 살 건지 정하기

일단 뇌에 힘을 줘서 좀 참아보세요

조용한 외톨이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처음 사무직으로 출근을 시작했을 때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아직까지 마음에 간직하려고 애쓰는 사소한 난관이 하나 있다.


프리랜서로 살 때는 주변에 가까이 싶은 사람만 가까이하는 게 비교적 용이했다. (물론 완벽히 가능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면서 그런 자유는 내 작고 귀여운 월급에 팔아넘겼다. 다양한 나이대, 다양한 성격이 모인 회사의 직원들은 서로 잘 맞아서가 아니라 월급이 필요해서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한다. 그러니 나랑 너무 다른 사람들과 하루 종일 일도 하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농담도 하고, 격려도 하고, 칭찬도 하고, 눈치게임도 하고... 여기서 인간의 온갖 고뇌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남의 엉덩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가는데 한 직원이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나의 일행의 대화는 “ㅇㅇ씨의 옷이 오늘 예쁘다” → “ㅇㅇ씨는 화려한 옷이 참 잘 어울린다” → “이목구비가 크면 화려한 옷이 잘 어울린다.” → “ㅇㅇ씨는 서구적인 미인형이다” 의 흐름으로 이어지더니(그때까지 나도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ㅇㅇ씨가 엉덩이가 되게 크다’고 했다. 서구적인 외형이라는 말에 맞장구를 치려고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런 대화에 익숙(?)지 않아 깜짝 놀라는 바람에 웃으며 돌려까기를 시전 해버렸다. "어머 슨생님 너무 자세하게 보신 거 아니에요? ㅎㅎ"


농담처럼 던진 거라 그냥 대충 아니라고 하고 말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의외로 당황한 듯 말이 길어졌다. 그때는 그냥 본인이 실수했다고 생각해 수습을 하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어 알게 됐다. 그분은 예전에도 같은 직원의 외모에 대해 함부로 코멘트를 했다가 서로 얼굴을 붉힌 일이 있었다고 한다. (아니 근데 왜 그 버릇을 못 버리시고...?)


참고로 엉덩이의 주인도, 엉덩이 얘기를 한 사람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다 여자였다. 아마 남자 직원이 저런 말을 했다면 정말로 크게 문제가 됐겠지만(...) 그렇다고 여자라고 괜찮은지? 한국인들은 여자가 여자 외모에 함부로 코멘트하는 것에 아직 너무 관대하다.


내가 직장인 생태계에 끼어들고 나서 묘한 난관처럼 느껴졌던 것은 한국사회의 평균적이고 평범하고 흔한 어떤 감각 같은 것이었다. 흔하게 소환되는 통념이나 관념, 흔한 수사법, 관성적 사고방식, 평범한 관용구나 가벼운 농담들, 무람없이 나오는 말, 어떤 호기심, 연예인 루머에서 무한 리필받는 스몰토크의 소재들... 나는 일단 남의 엉덩이 크기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과 무관한 사내 정치질의 전개과정들과 누군가에 대한 악의가 5g쯤 얹어진 소문들, 연예인 루머 같은 것은 정말 관심도 없고 듣기도 싫었다. 하지만 직장에 들어오니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적게 잡아도 과반이었다. 그러니 이런 대화는 한국 사회의 흔한 일상이고, 이런 것이야말로 '평범'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달리 말하면 나는 그전까지 이런 사람들을 잘도 피해 가며 살아왔던 것이다.





어떤 화법에 대한 연구


엉덩이 얘기한 사람의 이야기를 더 해보자. 그분은 우리 부서에서도 특히나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하는 빅마우스* 재질의 수다맨이었다. 나는 빡치는 회사 생활을 견디기 위해 이 사람의 화법에 대한 혼자만의 연구를 비밀리에 진행 중이다. (아님)


그가 가진 희한한 화법 하나는, 무슨 내용의 이야기든 거기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면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은  인물의 외모에 대한 코멘트로 끝내는 것이다. 그 앞의 내용이 외모와 상관있는 이야기라서도 아니다. (차라리 그때 옷차림 얘기는 조금 관련이라도 있었다.) 그냥 아무튼, 뭔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데, "(추신)"이 괄호 안에 명시된 것 마냥 그냥 모든 말에 추신이 붙어 있다.


<예문>
- 그 인턴은 일을 잘해. 되게 똑똑해. 얼굴도 이쁘장하게 생겼어.
- ㅇㅇ씨는 예전에 어디서 일할 때 만났는데, 내가 직장을 옮겼을 때 거기서 또 만나게 된 인연이 있어. 그 사람 얼굴도 갸름하고 연예인 ㅇㅇㅇ처럼 생겼어.
- 그 사람이 옛날에 어떤 행사에서 ㅇㅇ를 한 적이 있었지. 그 사람 얼굴도 되게 핸섬하게 생겼잖아.
- ㅇㅇ님이 예전에 어쩌고 저쩌고. 그분은 키도 작고 얼굴도 어쩌고 저쩌고…


더욱 슬픈 지점은 이런 말을 하는 그에게 딱히 악의가 없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의도가 굳이 있다면 칭찬을 의도할 때가 더 많았다. 그건 일종의 사고방식이었다. 그의 무의식은 남의 외모에 대한 정보를 무척 중요한 정보 값으로 분류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남의 외모 이야기에 집착할 수가 없었다.


또 한 가지 그의 특징은 만인이 만인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을 삶의 자연스러운 순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겐 늘 누구든 평가할 권리가 있었다(아무도 준 적은 없지만요). 그가 평가를 곁들여 꺼내놓는 대화의 소재는 연예인, 정치인부터 지금 자리를 비운 팀원까지 만인을 포용했다. 근데 이렇게 모든 사람에 대해 모든 말을 하는 사람과 같이 지내다 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한 가지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게 마련이다. '내 뒤에서도 나에 대한 말을 하고 다녔겠군...’


나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했을까? 약간 궁금하긴 하다.


*사실 빅마우스(bigmouth)라는 단어도 그분을 통해 알게 됐다. 그분이 다른 부서의 직원을 빅마우스라고 칭하길래 무슨 뜻인가 검색해봤더니…. 아니 그러니까 그게 당신이잖아요….








기껏해야 못 들은 척하는 바보가 됨


이제 회사에서 흐린 동태눈을 하고 있는 나는 더 이상 "(짐짓 모르는 척 쾌활하게) 어머 OO님 너무 자세히 보신 듯~ 호호호"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계속 그래 왔다면 나는 지금쯤 좀 더 멋진 파이터가 되어 절반에게 애매한 미움을 받는 직원이 되었을까? 그러나 난 너무 나약한 인간이라 지금은 듣기 싫은 이야기에 그냥...... 못 들은 척한다. 딴생각을 하거나.


회사에 슬슬 적응하고 사람들을 알아가며 나는 작고 귀여운 월급과 함께 막연한 공포감 같은 것도 덤으로 얻었다. 나도 여기서 10년쯤 일하다 보면 바로 저런 사람들이 되어있을 것 같은 강력한 예감. 오오 너무 무서웠다. 농담이 아니다. 그건 정말 내 미래에 대해 가장 슬픈 비전 중 하나였다. 나는 처음의 낯설고 이상했던 순간의 감각 - '헉 왜 남의 엉덩이 크기 얘길 하지?!' - 을 10년 뒤에도 갖고 있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그 와중에 나는 체제 순응적인 유형이다. 스트레스받아가며 결국은 대충 적응하고 있다는 말이다. 슬프게도 일행이 여럿 있을 때 못 들은 척하는 스킬은 배웠지만 1:1 상황에 상대방 말에 리액션 없이 가만히 견디는 스킬은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아...' '음...' 정도로 대꾸하며 대충 관심 없음을 표하다가도, 종종 그 적막함과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나의 사회적 자아가 튀어나와 상대방이 원하는 반응을 던져준다. 순간의 긴장은 내 안에서 해소되고 상대방은 좀 더 탄력을 받아 떠들어댄다.


<예시>
이런 듣기 싫은 대화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반응을 던져주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화자가 대상에 대해 평소에 자주 하던 말을 그냥 해주면 된다:
상대방이 아는 교수 A를 욕한다 → 그런데 상대방은 항상 A를 교수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고 비아냥거렸다 → 그럼 나는 대충 흘려듣고 이렇게 대꾸한다. "아, 또 자기 돈 챙기네요." → 그러면 상대방은 좀 더 신이 나서 계속 말한다. 내버려 둔다. 끝.


하지만 진짜 공포스러운(내 입장에서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그게 문제다.





평범이 왜 문제냐?


나는 이런 무례하고 쓸데없는 스몰토크를 질색하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게 여기서 '평범'의 의미다.


태생적으로 좀 선비 같은 타입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다. 그들은 굳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이미 남의 험담에 별 관심이 없거나 거부감이 있다. 이런 사람이 흔치는 않지만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들은 어딘가에 있긴 있었다. 하지만 난 진짜 평균적인 인간으로 태어났다. 나름의 사회화 과정을 열심히 겪으며 보낸 유년기에서 청소년기 사이에 나는 남의 소문에 대해 들을 때 몹시 흥분하던 사람이었다. 연예인 루머나 학교에서 누구랑 누가 절교한 얘기, 옆 반에 누구랑 누가 잤다는 얘기... 이런 건 왜 그렇게 재미있던지.


그러니 내가 최초에 적응을 한 방향은 "이런 얘기 듣기 싫음 → 이런 얘기 대충 들어줌"이 아니라, 반대인 "이런 얘기 좋아함 → 이런 얘기 이제 듣기 싫음"의 방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상사를때리면안되는데씨의 남 얘기 적응기
1단계: 본능에 지배받은 청소년기 (이런 얘기 좋아함) →  2단계: 20대 중반 이후 (듣기 싫다) → 3단계: 월급생활자 now (그래 네가 원하면 대충 들어주마...)


그러니까, 내가 남의 엉덩이 얘기에 질색했던 것은 내 본성이 아니라 성인이 되면서 (본성을 조금 누르고) 가지게 된 어떤 태도일 뿐이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본성은 누르고 쓸데없는 호기심을 버리기로 결정했을까? 잘 기억은 안 난다. 그냥 멀쩡한 어른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성인이 되면서 조금씩 무엇이 적절하고 부적절한 일인지 판단하려고 했던 것 같다.


월급생활자 2년차인 지금 난 주변에서 귀에 때려 박는 스몰토크에 슬슬 익숙해지면서 내가 그냥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람이었음을 다시 깨닫고 있다. 어떤 이야기는 여전히 듣기 짜증 나서 그만 좀 말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지경이지만, 또 어떤 이야기는 들으면 그럭저럭 호기심이 생긴다. (차이는 단지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고 없는 주제에 따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일 지루한 얘기=사내 정치...) 대충 남들과 비슷한 평범한 인간인 나는, 천박한 호기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호기심을 모른척 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어디서 누굴 만나며 살아남든 부적절한 호기심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내가 10년 뒤에도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몰래 귓구멍을 닫아 본다...


이 장황하고도 개인적인 공포 스토리는 얼마 전 회사에서 또 누군가 쓸데없이 친절하게 전해준 연예인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해 "아 진짜요?"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쓰게 됐다. 이런 반성문이라도 쓰면 그 누구보다 체제 순응적으로 살아온 내가 혹시나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될까 싶은 헛된 희망에. 하핫.


내가 평생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살 건지는 정하고 싶다. 지킬 수 없는 순간이 매번 찾아오더라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태어난 한에는 죽을 때까지 그냥 노력으로 일굴 일이다.


처음엔 어려워도 뇌에 힘을 줘서 좀 참아보면 되더라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한 나라의 끝도 없이 미끄러지는 대화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