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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끝도 없이 미끄러지는 대화 (2)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것


(전편) 이상한 나라의 끝도 없이 미끄러지는 대화 (1)


입사한 지 채 일주일이 안 된 시점이었다. 나는 A가 B에게 기획서 보고를 하는 자리에 함께 있었다. 결재권자인 B는 내용에 대해 별다른 지적은 하지 않았고 다만 한 가지 내용을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온 A는 내게 '방금 B가 어떤 일을 끼워 넣으라고 시킨 것은 사실 그가 사적인 욕심으로 하고 싶어서이며, 조만간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자기가 가져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지난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기 일을 챙기는 것을 보았다며 A는 곧 자기가 말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일주일 차 쌩 신입이었던 나는 아까 그 자리에서 그런 뉘앙스와 맥락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고, 이게 회사생활인가 싶었다. 또 B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A가 호언장담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B가 진짜 어떤 의도로 추가 의견을 줬는지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A의 추측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게 이제는 딱히 궁금하지 않다. 왜냐면 이런 비슷한 일은 지금까지 9,192,501,298번 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에 와서 생각한다. 그 장면은 어쩌면 앞으로의 내 회사 생활에 대한 어떤 복선이 아니었을까.




내 직장 상사 겸 투 머치 토커인 A는 항상 누군가의 의도를 추측해서 주변인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도 '이건 나만 알아냈어. 몰랐지?' 하는 기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A가 하는 추측들은 내 입장에선 거의 대부분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는데, 굳이 꼭 그렇게 생각할 이유나 근거가 희박한' 추측들이 대부분이다.


나의 상사 A의 첫 번째 문제는 통찰력이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자신이 굉장한 통찰력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서로 합쳐지면 곁에 있는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 수도 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건, 이라고 선생님이 말했다


주말에 병원에 간 김에 진료실에서 직장 상사 A의 이야기를 열심히 털어놓고 '당신의 상사는 ADHD일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은 요약하자면 이랬다.


'ADHD는 희망이 없는 병이 아니다.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 약을 먹어서 좋아질 수도 있고, 매뉴얼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스스로 자각하고 점검해나가면 일상생활에서 문제들이 나아질 수 있다. 그런데 상사 A의 경우 희망이 없어 보이는 건, ADHD 이전에, 그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배려가 없는 성향이라는 점이다. 특히 인사이트(통찰력)가 없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인데,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또 자신이 ADHD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선이 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환자분은 포기하고 지내보는 수밖에 없고, 포기하고 지내보다가 정 안 되겠으면 다른 해결책을 찾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다른 해결책이란 퇴사였다. A와 나는 인사이동이 없는 직렬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A가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스스로 관심을 가질지에 대해 나 역시 선생님처럼 회의적인 입장이다. 하필이면 A는 ADHD를 '폭력적이고 남과 잘 싸우고 가만히 못 앉아 있는 질병'으로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A가 살아오며 마주친 두 명의 케이스만 보고 과도한 일반화를 한 결과였다. 나는 그의 편견 섞인 말을 듣고 성인 여성의 ADHD의 다른 양상에 대해 여러 번 설명도 해주었지만, A는 나중에 기억하지 못했다.




새로운 엉거주춤


처음엔 의사에게 그가 ADHD일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 내 마음이라도 조금 편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최소한 그의 행동이 그의 의도나 인성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를 덜 미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번아웃이 온 지 꽤 되어서 마지못해 목이 몸통에 매달려 있는 좀비라는 점을 간과했다. 나의 어떤 이해심도 에너지도 모두 타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에 월요일에 다시 출근을 했을 때 내 마음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곧 또 다른 종류의 엉거주춤한 괴로움이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ADHD이기 이전에 자기중심적이고 배려가 없는 사람, 통찰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디서 어디까지를 이 사람의 인성으로 받아들이고 어디서 어디까지를 그의 질병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란 말입니까?


의사가 추측한 A의 진짜 문제 세 가지

자기중심적이고 배려가 없다.

통찰력이 없다.

     - 결과: 주변의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른다.

인정 욕구가 강하다.

     - 결과: 제대로 듣지는 않으면서 말을 계속한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도중에 A가 닫힘 버튼을 눌러서 동료가 문에 끼인 적이 두어 번 있다. A의 성급함과 부주의함도 싫었지만, 한 번은 A의 대사에 경악하고 말았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A는 남의 잘못을 목격한 듯 "에구, 아프겠다."라고만 했을 뿐이다.

갑자기 닫힘 버튼을 누른 것을 그의 주의력결핍의 징후로 보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럼 그 이후에 "에구, 아프겠다."는 그의 파탄난 인성의 결과로 이해해도 되는 것일까?


앞서 가는 A가 문을 잡아주지 않아서 문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ADHD 성향의 A는 주의력이 부족하니 나를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앞서가는 누군가 문을 잡아줄 때, A는 항상 몸만 쏙 빠져나가 가버린다.

이건 인성 문제인가?


동문서답을 하면서도 절대 말을 그치지 않고 대화의 80%를 혼자 점유한다. 난 듣다 듣다 지쳐버리는 경험을 한다.

다른 사람 말에 집중을 못하는 건 ADHD 성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인정 욕구로 날 괴롭히고 있는 건 인정되는 부분인가요?


이런 질문은 수십 개도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난 의사도 아니고 이런 질문엔 애초에 정확한 답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눈앞의 A의 존재와 함께 발생하는 고통들 앞에서 이 질문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나는 이 사람을 어디까지 미워해도 되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건, 당신의 ADHD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A가 나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부분을 하나만 꼽으라면 통찰력이 하나도 없지만 자신이 굉장한 통찰력의 소유자라고 착각하는 부분이다. 이런 사람이 주변에 고통을 주는 이유는, 그에게는 '되돌아보는 행위'가 없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도 살피지 않고, 자기 자신도 돌아보지 않고, 따라서 반추하지 않고, 성찰도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 별로 없다. 변화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


주변에서 A의 이상한 습관들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A에게도 상사 C가 있다. C는 A의 '동문서답'과 '상대방 말 끊기' 이 두 가지 습관을 극도로 싫어하며 A의 대답이 이상하거나 자신의 말을 끊을 때마다 화를 낸다. 하지만 절망적이게도 A는 자신이 동문서답을 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그저 C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한다. 또 말을 끊었다고 화를 낼 때면, 그가 단지 꼰대라서 말 끊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하며 뒤에서 흉을 본다.


하나 더. C 역시 투 머치 토커이기 때문에 업무시간에 A를 사무실 밖으로 불러서 속풀이를 1시간씩 한다. A는 쓸데없는 일에 업무 시간을 1시간이나 빼앗겨 속이 터진다. 그래서 나를 불러낸다. C 때문에 일도 못하고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어야 했던 1시간의 고통에 대해 토로하며 나에게 C 험담을 할 때, 내가 다시 그의 감정노동자가 되고 만다. 나는 왜 A가 타인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반추하지 않는지 의문을 품는다.


난 괴로워하며 교훈을 얻는다.

너무 싫은 사람을 마주할 때, 그의 어떤 점이 날 고통스러워할 때, 그때가 바로 나 자신을 되돌아볼 나이스 타이밍이구나.




에너지 블랙홀과 좀비를 위한 기도


에너지 블랙홀과 같은 그가 자기 정체성을 어느 날 깨닫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건 너무 큰 소망이 아닐까? 다만 나는 이제 빼앗길 에너지가 없는 좀비이기에 나 자신을 그에게서 조금 떨어뜨려놓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많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좀만 떨어져 지내요.
부디, 내일은,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입을 다물어 주시겠어요?

제가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그날까지...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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