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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끝도 없이 미끄러지는 대화 (1)

고통이 티끌처럼 모여 어느 날 태산이 되었다


#1

사무실 동료 중 하나가 취미로 게임을 한다. 점심시간에 느슨한 수다를 떨다가 누군가 그에게 이번 연휴에도 게임을 할 건지 물었다.

"저 사실 요즘 집에서 컴퓨터 안 한지 꽤 됐어요."

"앗 왜요?"

"아 그게… 데스크톱은 멀쩡하거든요? 근데 책상 정리를 안 해서 못하고 있어요."

우리는 같이 웃었다. 일종의 공감의 의미로.

A가 말했다. "하나 사야겠네~”

짧은 당황과 함께, 누군가 웃으며 대답했다. “책상을 치워야죠.”


#2

일을 하고 있는데 A가 파티션 너머로 갑자기 말을 걸었다.

"어디가 아프댔지?”

"예?"

"아까 봤는데… 안 아파 보이던데?”

“누가요?"

“아까 1층에 카페 갔다가 만났거든? 근데 막 그렇게 안색이 안 좋아 보이진 않더라고…”

A는 갸웃거렸다. 그리고 재밌는 농담이라는 말투로 음모론에 내 동의를 구한다. “우리한테 거짓말한 거 아냐?”

침묵.

“… 그니까, 누가요?"

"ㅇㅇㅇ씨. 카페에 있던데?”



A는 도통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떤 때는 띄엄띄엄 듣고, 어떤 땐 아예 그조차 듣지 않는 것 같다. 대화 주제에 흥미가 없어서도 아니다. 본인이 먼저 질문하고도 대답을 안 듣는다.


문제는 실제로 '듣지' 않으면서 자신은 '듣고' 있다고, 대화에 평범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이점이 아주 사람을 미치고 팔짝 뛰게 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 이야기를 할 때(#1) ‘요즘 게임 안 함’과 ‘데스크톱’ 정도의 단어만 듣고는 멋대로 '데스크톱이 망가졌다'고 넘겨짚는다. 그래서 “(컴퓨터를) 하나 사야겠네”라고 대꾸하는 식이다.


사실 그 순간 대화에 집중을 못했다면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게 아닐까? 실제로 다른 이들이 공감의 웃음을 지으며 어떤 대꾸를 하려는 찰나였으니, A가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런 티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A는 투 머치 토커다. 듣기는 띄엄띄엄 해도 그의 말하기는 영원히 끝날 줄을 모른다. 마치 고장 나서 끌 수 없는 시리(Siri)처럼 제대로 듣지도 않으면서 계속해서 무슨 대답을 한다.


A는 나의 상사다. 오늘은 입사 613일째. 가끔 소리를 지르며 회사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제일 큰 이유를 꼽으라면, 난 A의 밑도 끝도 없고 자기중심적인 대화 방식, 배려 없음, 산만함, 그리고 그의 꽉 막힌 귓구멍을 꼽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 내가 할 말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이다. 현실의 대화는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때로 잘못 듣기도 하고, 대화 중에 딴생각에 골몰하기도 하며, 아까 하다가 끊긴 말을 이어서 하기도 하고, 갑자기 딴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땐 단순히 '듣는다/듣지 않는다'의 두 개의 상태 대신, '이 대화에 (정신이) 몇 퍼센트 참여 중인가'로 상태를 묘사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대충 나의 어림짐작으로, 1:1 대화에서는 상대방 말을 80~90%만 들어도 대화는 대체로 잘 이어진다. 80% 밑으로 떨어지면 대화가 좀 삐걱거리기 시작할지 모른다. 한편 여럿이서 이야기할 땐 60~70%만 집중해도 그럭저럭 대화가 굴러간다.


나도 종종 딴생각을 한다. 앞사람 말이 지루해서 곧 화제를 돌리려고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다. 지루해서 흘려듣고는 ‘아. 그렇구나.’ 정도의 애매한 반응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누가 나에게 의문형으로 말을 걸면, 질문을 듣고 대답만큼은 제대로 한다. 또 남의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듣는 편이다.


A가 나의 번아웃의 원인 중 하나가 된 이유는 그가 대화에서 상대방 말을 '듣는' 수준이 30% 미만이기 때문이다. 그의 동문서답에 대화는 종종 갈 길을 잃는다. 때로는 상냥한 사람들에 의해 "아 뭐 그런 것도 있지만~” 하는 식으로 동문서답은 수습되어 슬프게도 대화가 심폐 소생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는  상냥한 사람들의 에너지에 빚을 지며 대화한다. 그리고 자신이 빚진 사실을 계속 모른다. 업무상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난 그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면 다른 사람과 하는 것에 비해 10배 정도의 에너지를 쓴다고 느낀다.


장담컨대 평일 하루 9시간 이상 붙어 지내는 직장 상사가 모든 대화를 이런 식으로 한다면 누구든 번아웃은 시간문제다. 


나도 입사 후 거의 1년가량은 A의 이상한 화법 때문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많이 들이며 대화를 했다. 그가 중요한 정보를 빼먹고 두서없이 뱉는 말에 내가 우선 되물었던 질문들, 이를 테면 “누구요?” “뭐가요?” “그게 어디 사업인데요?” “그게 뭐 관련인데요?” 따위의 물음엔 바로 적절한 대답이 오지도 않았고 바로 그 핵심만 없는 디테일들이 이어졌다. 결국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그가 하는 동안, 나는 주어지는 정보들을 모아서 탐정처럼 추리를 해야했다. 짱구를 굴리며 필요한 데이터는 오늘 만난 사람, 근래 들은 이야기, 내일 일정, 최근 난 인사발령, 오늘 뉴스에 나왔던 소식까지 너무 방대했다. 그렇게 스무고개 끝에 나는 “아, ㅇㅇ 말씀하시는 거죠?”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A의 두서없는 스무고개식 대화에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는다. 내가 추측할 수 없는 내용에 대해 추측하려 애쓰지 않는다. 내용이 궁금하면 묻고, 대답이 없다면 다시 묻고, 또 물을 뿐이다.




오늘 병원에 가서 물었다


A의 이상한 대화법은 회사에서 벌어지는 다른 온갖 부조리에 비하면 정말 티끌 같은 괴로움이다. 그런데 이 티끌이 1년 8개월간 쌓이니, 어느새 나에게 태산 같은 스트레스가 됐다.


오늘은 병원 진료가 있는 김에(나는 4년 전부터 정신과에 다니며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다. 지금은 상태가 좋아져 약을 끊어 가는 과정에 있다.), 요즘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문제를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 직장 상사가 ADHD인 것 같아요."


사실 지난 몇 주 동안 난 이 질문을 떨치지 못했다. 물론 A가 진짜 ADHD든 아니든 그걸 내가 꼭 알아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에게 자신이 모르는 질병이 있다 해도, 나는 직장 상사에게 내 추측만으로 병원에 가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회의적이다. A는 자신의 문제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병원에 찾아갈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나는 내 고민과 괴로움에 설명이나 누군가의 동의라도 구하고 싶었다. A의 행동이 어떤 질병에 의한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차라리 내 마음이라도 편해질 것 같았다. 최소한 그의 행동이 그의 의도는 아니었을 테니까.


내가 의사에게 묘사한 A의 특징들은 이런 내용이었다.


- 다른 사람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말한다.

- 카운터에서 계산을 할 때 앞사람이 조금만 지체해도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 말을 쉬지 않고 계속한다.

- 다른 사람이 말하는 도중 말을 끊고 다른 얘길 한다.

- 업무상 한 번 결정된 일을 잊어버리고 며칠 뒤 엉뚱한 말을 하거나, 자신이 내린 결정을 자꾸 바꾼다.

-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바로잡아 주어도 바로 잡아준 내용을 기억을 못 하고 같은 말을 또 한다.

- 걸어 다닐 때 시야가 너무 좁다. 동행자가 무거운 짐을 들고 있어도 문을 잡아주지 않고 먼저 가버린다.


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의외로 금방, 그분이 ADHD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 후에 이어진 설명에 나는 조금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공감했다. '직급이 나보다 낮은 사람이 ADHD인 경우엔 어느 정도는 챙겨서 끌고 갈 수 있으며, 때로는 ADHD가 있는 사람이 창조적인 일에는 적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처럼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ADHD일 때는 반대의 경우보다 3배 정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높은 직급의 직원이 하게 되는 '매니징' 업무가 ADHD 환자들에게 제일 취약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 8개월간의 내 괴로움에 어떤 설명을 듣게 되자, 어쩐지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좀 더 중요한 이야기는 그다음이었다. 'ADHD는 희망이 없는 병이 아니다.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 약을 먹어서 좋아질 수도 있고, 매뉴얼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스스로 자각하고 점검해나가면 일상생활에서 문제들이 나아질 수 있다.' 그런데 나의 상사 A에게 희망이 없는 건, ADHD 이전에 그가 가진 다른 성향들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다음 편) 이상한 나라의 끝도 없이 미끄러지는 대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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