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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가 마려운 엉거주춤한 엉덩이의 직장인

올해 1월엔 새 다이어리를 사서 앞머리에 이렇게 다짐을 써두었다.     


월급이 없는 삶을 언제나 준비하자.


근데 오늘 사진을 찍으려고 꺼냈는데 옆에 이런 게 쓰여 있는 게 아닌가.      





"ㅠㅠ 시발 너무 어려워"는 또 언제 적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혼자 웃고 말았다. 뭐 어쨌든 홧김비용(이라 쓰고 시발비용이라 읽는다)을 써버린 숱한 날들 중 하루였겠지. 그렇다, 월급이 없는 삶을 준비하기란 너무 어렵다! 돈은 모아야 하지만 시발비용을 쓰지 않으면 버틸 수 없어!


이번 주 월요일, 회사에서 일하다가 브런치에 충동적으로 작가 신청을 했다. 무언가 견디기 힘들어 무엇이라도 해야했던 것 같다. 작가 신청을 하며 난 '예술인도 못되고 직장인도 하기 싫은 엉거주춤한 사람'이라는 자기소개를 썼다. (예술인이 못 되는 이유를 물으신다면: 지난 6년간은 깔짝깔짝 연극을 하는 예술인으로 지냈으나, 직장이 생긴 후 작업을 못해서 ‘예술인 경력증명’을 갱신하지 못한 채 얼마 전 기간이 만료되어 버렸다.)


지금 직장에서 연극과 딱히 상관없는 일을 하며 월급 노동자로 지낸지 1년 8개월 정도 됐다. 그리고 1년이 채 안 됐을 때부터 난 언제든 퇴사를 할 수 있게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퇴사는 그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유는 너무 많았고, 직장인들의 흔한 퇴사 사유들과 정확히 똑같다.


과도한 업무강도

엉망진창인 조직문화

부패했거나, 소시오패스 거나, 비겁하거나, 무능한 임원들

상사의 고무줄 같은 업무처리

매뉴얼의 부재

꼰대들

갑질

불공평한 업무 배분

쥐꼬리만  월급

 조직에 개선의 여지는 없다는 깊은 깨달음

그리고  모든 것들의 결과로 빠르게 찾아온 번아웃.


난 위기다. '이직' 말고 '퇴사'를 하고 싶다. 월급쟁이이기를 포기하고 싶다. 예전처럼 근근이 먹고사는 반백수 같은 예술인 노동자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가 이직 대신 퇴사를 원하는 만큼 퇴사 난이도가 수직 상승한다. 다음 직장을 구할 것이 아니라면 퇴사 후 주머니 사정의 미래는 암울한 전망 뿐이기 때문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서서히 빈곤해져 청년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미래도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몹시 가능성이 높은 일이다. 이런 가능성을 고려하니 언제나 퇴사 운운하면서도 ‘진짜’ 퇴사는 앞으로도 한참이나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건 어쩌면 엉거주춤한 자세로 쓰는 가짜 퇴사 타령의 서론이다.


이 일도 저 일도 언제나 어정쩡한 자세로 애매하게 해온 나의 성정대로, 이번에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마나 오래 서있을지 모르겠다.


퇴사가 마려운데 아직 퇴사는 요원하고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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