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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별 앞에서 하는 말들 (1)

나의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3주 전까지 너무나 건강한 사람이었다.


7월의 어느 평일 날, 평소와 같은 시간에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간식을 드신 후였다. 오전 10시쯤 할아버지는 갑자기 할머니에게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으나 운동 중이었던 엄마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할머니는 콜택시를 불러 할아버지와 응급실로 향했다. 엄마는 이 유별난 성격의 노부부가 구급차 대신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가서 접수를 하고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던 일에 대해 몹시 속상해했다.


할아버지는 관상동맥이 막혀서 두 번에 걸쳐 응급 시술을 받았다. 심근경색이었다. 심근경색은 목숨을 위협하는 응급 질환이지만 젊고 건강한 사람은 일단 스텐트 시술을 받고 나면 곧 회복해서 퇴원할 수 있는, 치료와 회복에 있어서는 난이도가 낮은 질병이었다. 그러나 아흔이 넘은 나의 외할아버지는 시술 후 갑자기 폐 기능이 떨어지며 인공호흡기가 필요해졌다. 폐와 심장이 서로 번갈아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우리는 평생 큰 병 없이 건강했던 할아버지가 곧 회복하여 퇴원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기다렸다.


“할아버지 깔끔쟁인데…” 엄마는 할아버지가 호흡기와 소변줄을 주렁주렁 달고 기저귀를 차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얼마나 고역이겠냐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는 종종 할아버지 성격에 그 고역을 견딜 수 있었던 시간이 최대 3주였나 보다 하는 얘길 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최고의 깔끔쟁이었다. 자기 자신과 주변을 항상 깔끔하고 청결하게 정돈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의미에서도 깔끔쟁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자식이나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을 싫어했고, 또 모든 자원과 돈을 지나치게 아껴 썼고 무조건 저축했다. 성격이 급해서 6시에 약속이면 늘 5시 반에 도착했고, 80대가 되어 허리가 굽어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보다 빨리 걷는 사람이었다. 20대 초반의 나도 할아버지와 걸어갈 때면 보폭을 맞추기 위해 거의 뛰듯이 걸어야 했다.


외할아버지의 FM 같은 성격을 닮은 엄마는 그를 사랑해 마지않았다. 외할아버지나 엄마보단 아빠를 더 닮은 나 역시 깔끔쟁이 외할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날 오전엔 엄마와 외삼촌이 같이 병원에 가서 주치의를 만나고 온 날이었다. 할아버지 상태가 좋아져 다음 주쯤 일반병실로 내려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우리는 다시 할아버지의 빠른 회복과 퇴원을 기대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던 외삼촌은 오후에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날 저녁 갑작스럽게 할아버지의 심장은 멈췄다.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병원에 달려가던 엄마에게 의사가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엄마의 동의를 얻고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할아버지가 입원한 3주 동안 할아버지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엄마 한 명뿐이었다. 심장 시술 직후 마취에서 깨어나던 1시간 동안 면회한 것이 전부였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병원에서 외롭게 3주를 보내고, 8월의 어느 금요일 밤 갑자기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할머니와 엄마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붙들고 울었다. 할머니가 연신 "불쌍한 사람"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엄마는 병원에서 홀로 외롭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안고 미안하다며 엉엉 울었지만 그러면서도 신이 분명히 아버지를 기쁘게 받아줄 것이라고 말했고, 바로 그 신이 약속한 대로 먼 훗날 당신을 만나러 가겠다고도 여러 번 약속했다.


충실한 가톨릭 신자인 엄마가 역시 충실한 가톨릭 신자인 할아버지에게 하는 그 모든 약속과 다짐의 말을 옆에서 들으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엄마의 믿음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감히 상상할 수 없던 부모를 잃는 슬픔이 그날 그 순간 나에게도 생생했다. 한낱 연약한 인간이 이렇게 갑작스럽고 고통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세와 재회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니 엄마의 다짐과 약속의 말들은 모두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그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남겨진 자의 모든 기도는 떠나는 이의 명복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남겨진 이의 마음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딸인 나는, 엄마에게 이 슬픔을 견디어 받아들이게 해 줄 힘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장례를 치르는 기간에 문득문득 생각했다. 연약한 인간이 신에게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고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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