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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별 앞에서 하는 말들 (2)

어떤 사망선고

할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충분히 나누고 간호사를 불렀을 때 나는 꼴이 조금 처참했다. 내가 쏟은 눈물과 콧물로 마스크 안은 홍수가 났고 시야가 흐려 눈에 뵈는 게 별로 없었다. 간호사가 사망선고를 위해 의사를 데려오는 동안 얼굴을 대충 닦아냈다.


이미 금요일 밤이었고 주치의는 병원에 없었다. 아마도 그날 당직이었을, 한 젊은 남자 의사가 들어왔다. 젊다기 보단 조금 어려 보이는 의사였다. 아마 그 의사에게 잘못이 있다면… 단지 그날 당직이었다는 것뿐이었을 듯.





방금 전까지 가슴이 너무 아파 줄줄 울어놓고 갑자기 웃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어쩌면 똥구멍에 털이 나야 마땅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 덕에 이날의 애잔한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우리 세 사람 - 외할머니와 엄마와 나 - 옆에 서서 의사가 사망선고를 했다. 그런데 너무 웅얼거렸다.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에 누가 사망했다는 간단한 말을 하는 것인데도, 그걸 버벅거리는 바람에 바로 옆에 있던 나도 방금 무얼 들었나 싶었다.


사망선고를 이렇게 못 하는 의사에 대해선 상상해볼 겨를이 없었기에 그 상황은 나를 조금 당황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가 계속 되물었다. "뭐라고? 몇 시?" "안 들렸어" 할머니는 의사 목소리를 잘 듣기 위해 옆으로 다가왔다. 


사실 의사와 할머니 사이엔 조금 오해가 있었다. 의사는 현재 시간을 기준으로 사망 선고를 했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심장이 멈춘 시간이 궁금해서 의사에게 계속 되물은 것이었다. 아무튼 그는 할머니에게 붙잡혀 사망선고를 여러 번 되풀이하고서야 풀려났다.


웅얼대는 어린 의사가 할머니에게 붙잡혀 추궁당하는 모습은 어쩐지 애잔해 보였고, 나는 방금 전까지 엄마의 기도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을 철철 흘려놓고도 갑자기 이 장면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게 묘하게 나를 슬픔의 한가운데서 건져 현실로 돌려놓았다.


큰 슬픔 가운데에 갑자기 끼어드는 희극적인 순간들은 우릴 먼저 당황시킨다. 그리고 곧 우리가 몰두한 슬픔에서 우릴 건져 올려 여기에도 삶이 있음을, 지금 이 순간도 삶이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극과 동시간에 존재하는 희극적 순간들은 인생이 아이러니로 이루어져 있고 그 자체가 삶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비통한 동시에 우스울 수 있고, 우는 동시에 밥을 먹을 수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모순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나는 혼자 생각했다. 내 외할아버지의 죽음과 이 엉망진창인 사망선고의 순간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것 같다고.





역시나 우리는 며칠 뒤 장례식장에 앉아 그 의사의 변변찮음에 대해 후기를 나눴다. 엄마는 그 의사를 못마땅해했지만 나는 그 장면을 생각하면 그냥 우스웠다.


엄마의 속상함과 나의 웃김은 단지 딸과 손녀로서의 거리감의 차이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아버지를 사랑했지만,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그들의 충격만큼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무튼 손녀로서, 나는 그날의 사망선고를 생각하면 여전히 슬프면서 웃기고, 애잔하며, 왠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 어설픈 사망선고는 내겐 하나의 증표로 남았다. 큰 슬픔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조차도 삶은 종종 나를 가장 현실적인 순간으로 끌어와 삶의 다른 면을 보여주곤 했다는 증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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