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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퇴사할 수 있을까? (4)

나의 퇴사 여정 라이브 중계 4편




6일의 휴가와 잊고 있던 불안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거나, TV를 보거나, 먹거나, 강아지 산책을 가거나, 잠을 잤다. 커피도 마셨고, 옷을 사기도 했다. 브런치에 퇴사 과정을 쓰기 시작했다. 정리가 안 되어 일기나 다름없었지만.

잠시 마음이 평화로워 시간이 금방 사라졌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


점심때 혼자 집에서 눈을 떴다. 잠을 충분히 잔 지 5일째가 되니 혓바늘이 굉장히 작아져있었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의사소견서를 받으러 갈 수 있는지 물었다. 내일 오후로 예약을 잡았다.

상사가 내 퇴사를 계속 막으려고 한다면 사표와 함께 의사소견서를 내밀 생각이었다. 그게 딱히 무슨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내 의지 표명이다. 굳이 소견서까지 보여주지 않고 마무리된다면 좋겠지만. 혹시 모르니 휴가를 쓰는 김에 받아두기로 했다.


밤.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휴가 며칠 만에 낮밤이 거꾸로 바뀐 것이다.

며칠간 쉬는 게 마치 퇴사 미리 보기 체험 중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금세 밤낮이 엉망이 되니 퇴사 이후 생활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갑자기 우울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퇴사 이후 안정망 없는 불안한 삶이다. 그걸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퇴사를 결정하고 실행한 이후 처음으로, '진짜 퇴사해도 될까'하는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새벽 5시쯤엔 그래도 역시 퇴사가 옳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구체적인 생각들은 잠의 뒤편으로 잊혀졌다. 


화요일.


점심때 일어났다.

벌써 내일 출근이라니! 죽도록 싫었다! 너무 싫다! 죽기보다 싫다! 끔찍하다! 

오늘 하루를 우울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후 2시 30분.


다짐이 무색하게, 병원에 가는 길, 지하철에 멍하게 앉아 있는데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한 엄청난 불안이 갑자기 파도처럼 밀려왔다. 지하철에 앉아 있는 30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겨우 이틀 동안 혼자 지냈더니 외롭다고 느꼈다.

마치 퇴사하면 큰일이 날 것 같은 기분과, 당장 내일 죽도록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 하루 종일 번갈아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나갔다.


오후 4시.


병원에선 의사소견서보단 좀 더 확실하게 진단서를 가져가는 게 좋겠다며 진단서를 발급해주었다. 진료실을 나올 때 의사 선생님의 응원을 받았다.


진단서를 처음 받아본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내 질병의 진단코드를 확인했다. 돌아오는 길에 진단코드를 네이버에 검색해보았다. 


F41.2 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
"이 분류는 불안과 우울병이 공존하지만 어느 한쪽도 명확하게 우세하지 않으며 독립되어 정의할 만큼 증상이 존재하지도 않을 때 쓰인다. 불안과 우울병의 증상이 있고 개개의 진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심하다면 이 분류는 쓰이지 않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타 불안장애 [Other anxiety disorders] (한국 표준질병·사인분류 제1권)


어느 한쪽도 우세하지 않다고?... 나는 혹시 별로 아프지 않은 게 아닐까?

급기야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서 하는 생각이지만 그냥 퇴사에 대한 불안감에 떨고 있었던 것 같다. 휴가의 마지막 날이 혼란으로 점철되었다. 

덕분에 저녁엔 미친놈 같은 상태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친구는 내 표정이 어둡다고 걱정을 했다.




아니? 그래도 역시 퇴사뿐이야


수요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출근했다.


휴가 동안 있었던 일을 상사에게 미주알고주알 전해 듣고 오늘의 업무 지시를 받는 것만으로도 벌써 익숙하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복귀하니 역시나 일이 산더미였다. 혹시나 내가 퇴사를 망설일까 봐 신은 나에게 계속 새로운 스트레스를 공급해주었다. 그저 그런 몇 가지 일들로도 나는 너무 괴로웠다.

 

저녁 6시. 

퇴근시간이 되자 팀장님이 메신저로 퇴근을 재촉했다. 종일 바빠서 휴가 중에 쌓인 메일도 다 열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일이 이거 저거 남았다고 하자 '내일 와서 하라'며 무조건 퇴근을 하라고 했다.

하긴 나를 휴가 보낸 것도 이런 식이었지. 그냥 일을 줄여주면? 어련히 알아서 휴가도 가고 칼퇴도 한다. 하지 말래도 한다. 근데 내게 준 일은 여전히 산더미이고 말로 칼퇴만 시키면 내 몸을 쪼개란 건가. 자꾸 집에 가라길래 일을 놔두고 7시에 퇴근했다. 


목요일.


이럴 줄 알았다. 어제 미루고 간 일들 때문에 오전부터 재촉을 받으면서 일했다. 조삼모사 스트레스...


퇴사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상사들의 속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휴가를 다녀와서 기분이 좋아져 계속 회사를 다니기로 마음먹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업무시간에 사직서 양식을 네이버에서 검색했다. 

야근하고 9시에 퇴근했다.


금요일.


5월 말에 퇴직하겠다는 의지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30일 전인 지금 사직서와 진단서를 같이 팀장님에게 내밀고 싶었다. 근데 나도 팀장님도 회의와 출장에 끌려다니다 보니 금요일이 끝나도록 퇴사 얘길 할 시간이 없었다.


야근하고 11시에 퇴근했다.

이렇게 강제 휴가 4일의 앞뒤로 3일의 야근이 완성되었다. 답도 없는 회사여.




주말을 보내며 생각했다.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사직서와 진단서를 팀장님 책상에 두어야겠다. 그렇게 정해두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3편을 쓰고 꽤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간 너무 마음이 같아서 글을 쓸 수 없었다. 한참 전에 저장해둔 4편만 오늘 발행하며 생각한다. 누굴 위해 나는 이걸 쓰고 있나.


5편을 쓸 수 있을까.

작은 것에도 화가 나고 억울하고 슬프고 기분이 좆같아집니다. 상태가 별로 안 좋아진 걸 느낍니다. 머리의 퓨즈를 꺼야할 것 같아서 글을 이어서 쓰기 힘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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