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했습니다. 6월 17일에! (박수)
퇴사 후 딱 한 달이 되었습니다.
마무리 짓지 못하고 중단해버린 퇴사 라이브 중계 썰 이후로도 꽤 다채로운 상황이 펼쳐졌습니다만, (팀장님 회사에서 우시면 곤란해요) 저는 기어코 퇴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행복하네요.
브런치를 팽개치고 노는 동안 지인들에게 브런치에 글이 언제 올라오냐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죄송) 갑자기 제가 브런치에 흥미가 뚝 떨어지기도 했고, 퇴사하니 진짜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그 사이 응원의 댓글을 올려주신 몇 분 덕분에 알림이 와서 한두 번 들어와서 보곤 했습니다. 저조차도 잊어버린 제 브런치에 들어와서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있다니 고맙기도 하고, 약간의 부채감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브런치를 이대로 영원히 방치할 뻔했지만... 한 달이 지나니 이런 시시한 이야기나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뭐했나고요? 진짜로 누워만 있었습니다. 아무 때나 자고, 누워서 유튜브 보고, 밥 먹고 또 눕고...
사실 정말로 푹 쉬자면 두 달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직도 덜 쉰 느낌) 근데 8월 말까지 할 일이 하나 생겨서 아예 두 달을 푹 쉬진 못할 것 같아요. 퇴사 후 쭉 쓰레기 더미였던 책상을 치운 게 바로 이틀 전의 일입니다.
퇴사하려는 저(=도망 노비)를 붙잡느라 직장상사가 황당한 일들을 벌여서 그 황당한 일들을 그대로 중계하고선 퇴사를 하고 싶었는데요. 중간에 저의 멘탈이 나가버리는 바람에 퇴사 여정 라이브 중계는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기간으로만 봐도 퇴사 통보부터 실제 퇴사까지 두 달이 걸렸네요.
저는 쉽지 않은 퇴사였다는 것만 스스로 알아두고 모든 과정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습니다. 일단은 회복에 집중할 계획이라서요.
퇴사하면 당장 너무 좋다가 생활패턴이 뒤바뀌고 나면 금세 우울해질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근데 웬걸 생활패턴이 뒤죽박죽이 되든 말든 계속 좋네요. 비결이 있습니다. 저에게 모든 방종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죄책감이란 게 존재하지 않아서 쉽게 우울해지지 않습니다. 밤새 게임하다가 아침 8시에 자도 오케이, 오후 5시에 일어나도 오케이, 누워있느라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오케이, 돈을 많이 써도 오케이, 돈을 허튼 곳에 써도 오케이, 청소를 안 해도 오케이... 심지어 언제까지 이렇게 놀겠다는 제한도 스스로 두지 않았습니다. 무한대의 방종! 죄책감이 없는 날백수 생활이 얼마나 달콤한지 아십니까! 그러다가도 조금 답답하고 기분이 처질 때는 운동 부족 탓이니 산책과 운동만 잘 챙겨주면 됩니다. 운동을 해서 기분이 나아졌다면 다시 침대에 누워서 날백수의 엉망진창 하루를 즐기면 됩니다.
쓰고 보니 제가 일종의 한풀이 같은 걸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회사 2년 4개월 다녀놓고 무슨 한이 그렇게 쌓였다고 한풀이를 할까 싶기도 하지만, 이 대단한 한풀이가 다 끝나야 제가 멀쩡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저의 지금 상태는 두 달 전과 비교하여 매우 좋아졌습니다.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는... 좀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필명을 바꾸어야 할까요? 저에겐 이제 상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상사는 때리지 않고 무사히 퇴사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