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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소 Dec 07. 2021

바흐의 손가락 연습

예술병 말기 or..

 딩동댕동 딩동댕동

시조처럼 지켜진 규율은 긴장한 내 작은 손을 더욱 자유분방하게 만들었다. 문득 그때 생각이 난다. 바흐의 파르티타. 여느 요령은 잘 익히면서 끝 매 무리를 잘 짓지는 못하는 나에겐 참 무서운 세계였다. 물론 언젠가는 해낼 수 있었지만, 속으로는 난 도저히 이 곡에게 안정감을 줄 수 없다 생각했다. 바흐의 작품들은 언제나 피아노든 바이올린이든, 평온함의 시련이었으니까.


 글도 같다. 모두가 똑같은 글을 쓴다. 아니, 누군가는 다를 것이다. 그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누군가에게 맞추기 위해서 의미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은 완벽의 바흐를 완성하기 위한 예행연습 같았다. 별난 천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글은 쓰기 싫었다. 그래서인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원하는 것인지 원하지 않는 것인지.


 어느 누구는 자랑하고, 어느 누구는 실망하고, 어느 누구네들은 호칭에 취해 여과되지 않은 생각들을 그저 양식장에만 풀어놓았다. 먹고 먹고 번식하고 늘어나 똑같은 물고기들 사이의 똑같은 물고기 즉 글자가 범람하게 될 뿐이었다. 성공의 성공의 성공의 루머만을 서로 말하다 결론적으론 계획대로 몇 마리는 잡혀가 횟감이 되었다. 그렇게 변한 건 없었다.


 그래 이런 복사의 양식장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요즘 글자는 다 이런가? 까탈스러운 속마음은 이내 맞춰야 하는 두뇌 풀가동의 벽을 넘어야 했다. 모양새를 맞춘다, 어떨까. 지금 양식장의 어부는 내 울퉁불퉁한 물고기를 어찌어찌 따져 평가 중일 테다. 그렇게 내 물고기가 불만인 듯 턱을 내밀고 있어도 내일이면 밀려드는 양식장 고기들을 양식장 안으로 들여보낼 것이다. 그 안에 내가 섞여 들어갈 수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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