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낮의 그늘 Feb 16. 2020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에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배 위에 느긋이 누워있는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나는 또 불안을 호흡한다. 녀석의 시간은 나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별이란 녀석이 노크도 없이 찾아와 가장 소중한 이 작은 털 뭉치를 앗아갈 것만 같아서.




이제 여덟 살을 앞둔 아름다운 고양이.



하필 안락사를 하루 앞둔 녀석의 공고를 발견한 것이 이토록 남루한 인간이라 너의 삶은 또다시 궁핍해진 것은 아닐지 늘 불안하다.


네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 누릴 수 있었던 것을 나의 다급함이 빼앗은 꼴이 되었을까 봐.

너를 위해 뭐든지 다 할 수 있노라 울먹이던 내 감정이 사실은 나를 위한 이기심이었을까 봐.

나의 후회는 방 안에 터진 유조선처럼 바닥을 까맣고 찐득하게 물들인다.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던 녀석이 처음으로 내 이부자리를 파고들었던 날을 기억한다.


처음으로 내 손을 깨물었을 때.

애웅, 하고 내 부름에 답해줄 때.

지쳐 울고 있던 내 발 끝에 뺨을 가져다 대었을 때.


한 때 내가 녀석의 구원이라 자만했던 날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 사실 네가 나의 구원이었다는 것을.

널 위해 뭐든지 하겠다 다짐하던 그때에, 이미 너는 너의 모든 것을 내게 내어주었다는 것을.


호흡하는 배 위에 이제는 완전히 온몸을 기대어오는 뜨거운 체온은 또다시 나를 녹인다. 엉망으로 풀어헤쳐진 후회와 불안 따위는 녀석의 온도에 풀이 죽어 사라진다.


너는 오늘도 나를 구해주고 쌕쌕거리는 숨을 내 위에 풀어놓겠지. 이 모든 구원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매거진의 이전글 '러브 유어 셀프'는 망해버려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