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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Mar 16. 2020

엄마는 미안할 게 하나도 없어


오메, 어째야 쓰까.


집에서 출발한 차가 고속도로 어귀에 접어들 무렵 엄마가 난처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 왜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다. 아빠가 차의 속도를 줄이려 하자 엄마가 다시 울먹거렸다.


"얘 주겠다고 싸놓은 김치를 놓고 왔어야."


생각보다 훨씬 작은 사건 스케일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또 가지러 오면 되지, 택배로 보내줘도 되고. 한층 누그러진 분위기에도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내가 늘 이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해주고도 미안한 게 부모 마음이라지만 엄마는 왜 항상 나에게 미안할까? 뭘 그리 잘못한 걸까?


김장을 할 줄 몰라서,

놀러 갈 때 용돈 한 번 쥐어주지 못해서,

해외여행에 염치없이 빈 손으로 따라가서,

그리고 엄마가 멍청해서 늘 미안하단다.


푸념 섞인 사과에 변명하는 것은 내쪽이다.


평생 맞벌이로 일했는데 무슨 김장이야,

성인이 놀러 가는 데 엄마가 왜 용돈을 줘,

해외여행은 내가 엄마를 초대한 거잖아,

아니야. 엄마는 멍청하지 않아.



내 변명은 엄마에게 잘 들리지 않는다. 가끔 내 진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할 때도 있다. 엄마는 미안할 게 하나도 없는데 왜 자신에게 상처를 내는지. 엄마가 엄마를 잘 챙겨줬으면 좋겠는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감정은 복잡해지기만 했다. 나는 그녀를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프고 미안하고 또 죄책감이 든다.


일부러 연락을 피하기도 했다.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엄마의 연락에 나 보면 돈 생각밖에 안 나냐며 비수를 꽂았다. 엄마와의 대화는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엄마의 사과도 들을 일이 줄어들었다.





어느 날 혼자 떠난 여행에서 문득 엄마 생각이 나서 편지를  썼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뭐 그런 내용이 두서없이 담겨있는 편지였다. 구멍가게 같은 문구점에서 제일 싼 종이와 펜을 사서 쓴 편지였는데 그걸 받은 엄마가 밤늦게 카톡을 보냈다.


딸, 네가 쓴 편지를 보니 눈물이 핑. 나도 사랑해. 우리 더 힘내서 열심히 살아보자.


엄마는 힘내자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다. 평생 무기력해서 누워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 길로 아주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썩 다정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통화 말미에 엄마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고작 편지 한 장에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를 달래면서 후회했다.


나는 엄마에게 핀잔을 주기만 했지, 진심으로 다정하게 말 걸어준 적이 없었다.

미안하다고 하는 엄마를 달래주었던 게 아니라 자신감 없는 엄마를 못마땅하게 여겨 대화를 끊어버렸다.

완벽한 엄마가 아닌 그녀를 원망했었다.


뭐가 그래, 아니야. 또 왜 그렇게 생각해.


자신의 사과에 돌아오는 타박을 엄마는 어떻게 견뎠던 걸까. 나는 왜 그동안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나.






엄마는 며칠 뒤에 또 말했다.


난 그런 대단한 일 못해. 보기나 할 줄 알지.

아이, 엄마. 할 수 있다니까?


습관처럼 꾸중하듯 목소리를 높였다가 얼른 꼬리를 내렸다.


휴대폰 너머에서 엄마는 우리의 침묵을 인내한다. 예전에는 더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거칠어진 손에 깍지를 껴고 무릎을 베는 상상을 했다.



그래, 엄마. 내키지 않으면 하지 말자.

하고 싶은 것만 하자.

엄마는 매일 미안해도 괜찮아. 내가 다 용서할 테니까.

우리 사이의 죄책감이 모두 녹아 없어질 때까지 사랑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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