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만큼 누렇게 때가 탄 욕조에 가물가물한 내가 있다. 선물로 받은 주먹만한 배스밤 덕분에 물은 핑크색. 바닥에 별가루 같은 것들이 흩어져 있어 나의 오래되어 낡고 헤진 집에 낭만이라는 놈을 쏘아댄다.
퉁퉁 불어버린 맨손이 물결을 살랑대었다. 욕조 안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던 나는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겉이 식어버린 목욕물이 턱 끝을, 뺨 언저리를, 눈꺼풀 위를 스치우고 이제 나는 지구로 가라앉는다. 한없이 느리게.
봄은 오는가. 서늘한 겨울 바람 한자락에 살풋 얹어진 가느다랗고 아스라질듯한 그런 봄 말고. 봄은 오는가. 나의 생에 욕조물처럼 핑크색이고 반짝이고 별가루를 머금고 따듯하고 이토록 영원이고 싶을 봄은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