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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Feb 04. 2020

'러브 유어 셀프'는 망해버려라.

스스로를 사랑하라니! 다시 읽어도 웃음이 난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낫다.


'힘내', '조금만 더 견뎌봐' 그리고 '너 자신을 사랑해봐!'. 이 얼마나 보기 좋은 말들인가. 하지만 보기 좋은 만큼 쓸 데 없다. 책임도 없다. 바람이 불면 훅 날아가버린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 문장을 가슴 한편에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적절히 써먹을 타이밍을 기다린다. 맹수처럼. 나 같은 무력한 인간을 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문장들이 튀어나온다.


힘내고, 조금만 더 견뎌봐요. 좋은 날이 오겠죠. 그때까지 자신을 사랑하며 기다리세요!


내가 힘을 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가. 버티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내가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싫어서 증오한다고 생각하는가. 음, 나는 그저 무력했을 뿐이다. 무력했던 나는 저런 말들을 듣고 나면 더 무기력해졌다. 나는 힘내는 것조차 할 수 없는데, 그들은 힘내라는 말을 꽃비처럼 뿌리고 다녔다.




상대를 정말 아낀다면 쉽게 말하지 말라.


경험상 내게 '럽유어셀프'를 시전 한 사람들은 대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좀 더 제대로 말하자면, 내가 얼마나 깊은 수심까지 가라앉았는지 모르는 데다 알려고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그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그냥 적절한 타이밍에 직언을 하고, 내가 그 말에게 얼마나 세게 두드려 맞았는지 반응을 살핀다. 자신이 세게 때릴수록 내게 더 큰 변화를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아니. 나는 그 썩을 놈의 말들을 골백번은 더 들었지만 단 한 번도 긍정적인 변화를 얻은 적은 없었다. 그건 선한 영향력이 아니다. 그냥 반항할 수 없는 상대에게 미사일을 퍼붓는 거나 마찬가지다. 황폐해진 상대의 마음에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의 오만이다.



어느 날 나는 당시 가까웠던 친구에게 나의 우울에 대해 털어놓았다. 가끔 죽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영원처럼 느껴지던 침묵 끝에 그가 말했다.


"네가 좀 예민한 것 같은데? 그런 일은 누구나 다 겪어."


이후에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힘듦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지만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뒤통수가 얼얼해진 채 떠드는 그의 입술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집에 왔다.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해봐. 넌 소중한 존재인데 왜 시간을 낭비해?”



힘든 사람과 힘든 척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척도가 분명하기라도 했다면. 


그의 말마따나 나는 아픈 척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겪은 불행은 밖에 나가면 발에 차이는 수준으로 흔한 일이었다. (가난. 얼마나 잘 팔리는 단어인가!) 나는 아픈 척하는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했다. 더 힘든 사람들의 사연을 찾아내고,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보고 난 다음 더 우울해졌다.


양다리를 끌어모아 침대 위에 앉았다. 등 뒤에 닿는 벽은 차갑다. 팔뚝에 이마를 처박고 오래오래 울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그리하여 그날도 나는 패배자였다.




이러니 나 같은 인간에게 '러브 유어 셀프'라는 말은 사치다. 이토록 우울하고 흑백이고 모래 같고 무의미한 존재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진짜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힘내라는 말조차 쉬이 하지 못했다는 . 그 감정의 차이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너를 사랑하라' 따위의 조언을 하기 전에, 제발 부탁이니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해달라.


그 한 마디는 나와 같은 우울한 인간의 매캐하고 시커먼 인생에 하나의 붓 자국이 될 것이다. 내 존재가 비록 먹지라고 해도. 그것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어떤 흔적에 불과하다고 해도 나는 몇 번이고 그 자국을 쓸어 볼 것이다.


내게도 사랑받을 만한 점이 하나쯤은 있구나. 그렇게 위로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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