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가장 소중했던 친구를 떠나며

<감정 폭력> - 베르너 바르텐스

by 낮의 그늘


첫 직장에서 만난 친구 A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와 잘 맞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말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털털한 성격의 A는 이른바 센 언니를 동경하는 나에게 사이다와 같은 존재였고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그러나 A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 실수로 인해 A의 기분이 상하는 일이 점차 늘어났다.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자신과 같은 메뉴를 주문해서,

길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해서,

타인을 흉볼 때 동조해주지 않아서.


A는 친구라면 그 모든 것을 마땅히 해야 한다고 했다. 진짜 친구라면 이럴 순 없다고 화를 냈다. 한 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업무 시간에도 그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사과를 해야 했다.


한바탕 싸움과 화해의 시간을 거치면 A는 버릇처럼 말했다.



우린 역시 잘 맞아. 최고의 친구야!


아주 오랜 시간 A의 말에 끌려다니면서도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내가 어리석어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눈치가 빠르지 못해서 늘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A에게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시들어가는 화초처럼 자존감을 잃었다.


때마침 집에도 이런저런 일이 터지면서 결국 우울증까지 얻었다. 무기력한 나는 A의 심기를 거스르기 일쑤였고 싸움에 지친 내가 우울증을 고백하자 그녀는 말했다.



내가 너 예민하게 굴 때부터 알아봤다. 뭐 그렇게 힘든 게 많아?



나도 안다. 우울증을 얻을 정도의 관계는 끊는 것만이 답이라는 걸. 하지만 당시의 나는 모든 책임을 나에게 물었다. 나는 왜 그렇게 쓸데없이 예민해서 A에게 짐만 얹어주는 걸까.


그 날 이후로도 수 없는 일방통행의 다툼은 계속되었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던 어느 날, 긴 고민 끝에 나는 5년짜리 우정을 끊었다. 시원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내가 감히 오랜 우정을 끊을 정도로 잘난 인간일까? 참으로 답답하게도 이번에는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졌다.




이 책은 비단 친구 사이에 있는 감정적 폭력뿐 아니라 다양한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감정 폭력을 다룬다. 폭력이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했던 순간을 명확히 정의해준다.



아직까지도 A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던 나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이 되었다.


A의 행위는 폭력임이 마땅하다는 것과 한 때 소중했던 인연을 끊어버린 나의 행위는 당연한 자기방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상처 받은 사람은 반드시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서만 찾지 않고 자신도 마찬가지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강한 정신력의 반증이다.

- <감정 폭력>, 베르너 바르텐스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다양한 폭력에 시달린다.

부모로부터, 친구로부터, 연인으로부터.


모든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가 챕터별로 잘 쪼개져있으니, 자신에게 해당하는 부분만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에게 상처주는 그들을 기꺼이 감싸고 보듬어주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폭력을 당하는 중임을 인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나처럼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버티기만 해야 한다.


특히 자신이 겪는 일이 너무 사소해서 고통이 고통인 줄도 모를 때가 많다. 은근한 따돌림, 교묘한 의지를 숨긴 단어 선택, 뭐 그런 것들. 당신이 감정적으로 고통스럽다면 거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왜 내가 아픈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치유는 <감정 폭력>으로부터 원인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보기를 바란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이 책이 꼭 도움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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