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시들고 있다. 꽃이 지고 난 후엔 녹음이 푸르러지는 계절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못내 아쉽기만 하다. 왜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은 빨리 떠나버릴까. 아직 겨울옷도 다 정리하지 못했는데. 세상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뛰어가고 나는 늘 계절 지난 옷을 입고 산다.
지난봄에 우울한 기분을 끌어안고 소주 22병을 비운 후로 산책하는 버릇을 들이는 중이다. 천근만근인 우울증 환자의 몸을 다스리는 나만의 비법은 세수를 생략한 채 곧장 신발부터 신어버리는 것. 마스크를 쓰고 캡 모자를 눌러쓴 모습은 많이 누추하지만, 뭐 어쨌든 훌륭한 성공률을 자랑한다.
내가 사는 곳은 빌라가 빽빽하게 모여있는 시멘트 동네이지만 조금만 걸어 나가면 가로수를 심은 거리가 나온다. 초등학교, 중학교도 있고 아파트도 있어서 볼거리가 풍성하다. 아침에 시간을 잘(못) 맞추면 등교 중인 아이들과 아이들의 손을 잡은 가족들을 구경할 수 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은 것이 언제였더라. 또 저렇게 기분이 먹먹해지는 것이 걱정되면 코스를 살짝 비틀어 커다란 마트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걷는다.
손에 쥘 수 있는 낱장의 꽃잎 대신 하얗게 세어버린 민들레 홀씨와 송진가루가 산책로의 허공을 가르는 것을 구경했다. 영화에서는 그 민들레 홀씨라는 것이 참 예쁘게도 떠다니던데, 차량 소리 빽빽한 회색의 도시에서는 그저 시야를 방해하는 부유물로만 보인다.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에도 노란색 송진가루가 자국을 남긴다. 그것을 툭툭 털어냈더니 조금 후에 재채기가 났다.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잠시 풀썩이는 먼지들.
발 끝에 들러붙는 솔가루가 질척대는 늪처럼 걸음을 붙잡았다. 어느새 등교하던 아이들과 웃음소리, 재잘대는 소리가 모두 사라졌다. 소소하게 복작하던 거리엔 나만이 남았다. 겨울이 되돌아온 건지, 내가 아직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눈에 띄게 속도를 줄인 채 나는 거의 멈춰 선 것이나 다름없는 속도로 같은 풍경에 머물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늘에서 거리로 뭔가가 뚝뚝, 불규칙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아파트 담벼락 너머로 팔을 길게 늘어뜨린 소나무에서 솔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앞질러 달리는 전동 킥보드를 피해 거리의 구석에서 제법 동그란 모양의 솔방울을 주웠다. 그것은 언젠가 옷깃에 붙어있던 꽃잎과는 달리 지나치게 건조하고, 버석거리고, 묵직했으며, 예쁜 맛이 하나도 없었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순간에 박살 났을 날개의 한쪽 끝이 가련하기까지 했다. 과연 떠나는 봄을 알리기에 이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랜 시간 반복되어 몸에 베인 부정적인 생각들이 솔방울을 쥔 손 끝에서부터 스멀스멀 번져나간다. 상실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떨어져 나간 솔방울 따위가 아니라, 그것을 쥐고 있는 나라고.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있는 바보 같은 인간.
쿵 하고 내려앉은 어두운 상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머리 위로 떨어진 또 다른 솔방울이었다. 그것은 귀 끝을 스치고 어깨에 부딪혔다가 다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솔방울이 원래 달려있었을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내게 솔방울을 던진 범인이 그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래, 무리 지어 늘어진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올려다본 열 걸음 짜리 숲은 몹시 장난스러웠다. 불규칙적으로 바닥에 떨어지는 것들은 마치 장난꾸러기 요정이 거리의 사람들에게 장난을 거느라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진 마른 잎사귀나 솔방울 같았다. 내 숲에서 그런 불온한 상상 따위 하지 않았으면 해. 그렇게 호된 꾸중을 하면서 커다란 솔방울을 집어 들었으리라.
존재하지 않은 요정의 일갈에 벙찌는 것도 우습지만 실제로 나는 솔방울을 손에 쥔 채 한참을 그곳에 서있었다. 봄이 떠난 자리에 남은 바싹 말라 건조한 것들을 구경하면서. 또 이따금 날벌레의 공격에 몸을 휘청이면서. 상실감을 다독이며 봄을 떠나보내느라고 아침 미팅에는 조금 늦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