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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Dec 05. 2022

도서관 가는 일기: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

22.11.20

빌린 책 목록: 5일 만에 끝내는 클래식 음악사,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2022.11.20


어제 달달 떨며 인생 두 번째 연주회를 마치고 돌아왔다. 설렘이 가라앉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늦은 밤에 혼자 마신 맥주 탓인지 새벽 내내 잠을 설치다가 겨우 잠들었다. 느지막이 눈을 떴다고 생각했는데, 평소에 도서관에 가던 그 시간이었다. 오전 11시 30분을 막 넘기던 시간.


 찾지 못하고 검색해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예술, 그러니까 정확히는 음악 관련 도서가 있는 서고 번호를 드디어 찾았다. 아예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그동안  찾고 있었던 거였다. 예술이라는 장르로 뭉뚱그려진 공간은 커다란 책꽂이 두어 개 정도의 크기. 아무래도 시각 자료가 많아서 그런가 책들의 크기가 들쭉날쭉했다. 평소 들르던 다른 코너에 비해 책들이 훨씬 크고 두껍다. 그리고 어쩐지 정리가  되지 않은 듯한 모습. 그런 불규칙함도 예술적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너무 나간 거겠지?


음악 섹션에는 내가 원하던 책들이 많이 있었다. 최근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고 부쩍 클래식을 찾게 되었다. 그중 가장 쉬워 보이는 클래식 역사책을 골라서 돌아서려다가, 시야에 윤종신의 에세이집이 들어오길래 충동적으로 집어 들었다. 가요도 잘 듣지 않고, 발라드는 더더욱 안 듣는 내가 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카페에 앉아서 원래 읽으려고 했던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대신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를 먼저 꺼냈다.






예상했던 대로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는 윤종신의 작업 일지였다. 곡의 가사를 쓸 때 어떤 에피소드를 떠올렸는지, 모티브가 된 사건은 무엇인지, 무슨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발라드 장르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서 선호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런 장르적 특성도 있구나. 발라드는 구슬프기만 하다는 내 편견이 부끄러워 몰래 마음속 휴지통에 던져 넣는다.


전부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초반에는 어쨌든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유독 로맨스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페이지를 훌쩍 건너뛰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웬일인지 재미있게 읽었다. 몇 년 전인지 기억도 안 나는 마지막 연애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더 이상 곁에 사람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의 아름답고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며 느릿느릿 읽어나가다 보면 다른 주제들도 만날  있다. 역시 사랑만큼 일상적이면서 다정한 이야기들. 윤종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꿈을 응원하는 메시지도 있고, 헛발질 중인 삼십 대들(그렇다. 바로 !) 위로하기도 하고, 창작자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한다.  기타 등등. 발라드 가수라고 해서 온종일 사랑과 이별에 둘러싸여 살진 않는구나. 하긴 당연하다. 가끔 그런 당연한 사실을 까먹는다. 이것도 휴지통에 던져 넣자.



말미에 저자는 책으로 내기 위한 이야기들을 정리하면서, 결론 나지 않은 것을 섣불리 규정해버린 것은 아닌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포장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이 책에 그런 실수를 했을 거라고 했다.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왠지 사과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책에 실려 포장된 이야기들이 윤종신이라는 작사가를 보여주었다면, 이 한 문단이 인간 윤종신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아주 약간일지라도.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아무것도 확언하지 않는 사람은 무척 드물고, 그래서 멋지다. 멋진 사람이 쓴 작업일지를 읽은 나도 곧 멋져질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상상. 오늘의 책은 성공이로군. 뒷면을 펼쳐보니 2018년 책이었다. 자기 이야기를 맛깔나게 쓰면서도 듣는 귀를 가진 이 어른이 또 책을 내줄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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