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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Dec 12. 2022

도서관 가는 일기: 펭귄의 사생활

2022.12.03

오늘 빌린 책: 펭귄의 사생활, 5 만에 끝내는 클래식 음악사,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2022.12.03

지난주에 잠깐 들러서 새 책 한 권만 빌리고 돌아간 바람에 기록은 또 오랜만이다. 어쩐지 일요일이 아닌데도 도서관에 오고 싶더라니 한 주 빠져서 그런 거였구만.


월드컵이 화제다. 4년에 한 번뿐인 축제이긴 하지만 올해 월드컵은 시큰둥하게 보내려고 했다. 예선 내내 결과가 궁금해 근질거리는 것을 잘 참았는데 하필 어제(포르투갈전 있던 그날) 잠이 오질 않았던 것이 화근이다. 한창 책을 읽다가 눈이 아파 휴식 겸 라이브 방송을 켰는데, 그때가 후반 20분경이었다. 1:1으로 비기는 상황에서 잘해 봐야 무승부, 예선 탈락이 91%로 점쳐지던 그 순간이다.


그 말은 누가 제일 먼저 했을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추가 경기 시간 10분도 채 남기지 않고 휘슬이 울려대는 경기를 보다가 잠깐 휴대폰을 내려놓았는데(나는 미디어에서 누가 넘어지거나 다치면 괜히 나도 아픈 것 같아서 오래 보지 못한다), 곁에서 자는 고양이의 이마를 쓰다듬는 순간 창문 밖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말 그대로 괴성이었고 순간 머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열기가 있었다. 다급히 휴대폰을 들었더니 다행스럽게도 인터넷 방송은 살짝 느린 덕에 역전골이 터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아악! 내 입에서도 작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양이가 잠을 방해받고 뒤척거렸다.) 십여 년 만에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했다는 뉴스가 쏟아졌고, 나도 거기에 있었다. 이전의 시큰둥함은 모두 잊어버렸다는 듯이.



… 아무튼 그런 고로, 지난 새벽 내내 ‘꺾이지 않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다가 늦잠을 잤다는 이야기이다. 분명 여덟 시 알람을 끄고 살짝 눈을 감았을 뿐인데, 눈을 떴더니 열두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주말치고는 일찍 일어난 셈인데 다시 눕는 대신 도서관에 가기로 한 것은 분명 새벽의 경기가 준 감동 때문일 것이다.


2주 전에 빌렸는데 필기까지 해가며 공부하느라 다 못 읽은 <클래식 음악사>를 재대출하고, 김겨울의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를 보자마자 집어 들었다. 두 권으로는 어째 좀 아쉬워서 평소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과학 섹션 중 생태학, 생물학 코너를 찾아 들어갔다. 노란색 표지에 멀뚱히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펭귄이 귀여워서 빌렸다. <펭귄의 사생활>. 새벽에 첫눈이 내린 겨울, 카페에서 달짝지근한 케이크를 먹으면서 읽기에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펭귄의 사생활>을 다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펭귄만 다루는 책이 아니라, 바이오 로깅(Biologging)이라는 생태 관찰 방법에 대해 다루는 책이었다. 그걸 깨닫는 과정에서 약간의 실망이 있었지만(내 펭귄은 어디 갔나요?), 내용이 워낙 재미있는 탓에 금세 잊어버리고 완독 했다.


참다랑어는 왜 태평양을 횡단할까?

벌새는 어떻게 공중에서 멈춰있는 걸까?

세상에서 제일 깊이 잠수하는 동물은 누구일까?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나 품어보았음직한 귀여운 질문과 해답이 모두 여기에 있었다. 심지어 생물학뿐 아니라 물리학이 가미되어 있어서, 수치와 연산에 목마른 이과형 독자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그건 바로 나다.



책의 중심에는 바이오 로깅이라는 동물들의 생태를 측정하는 기술이 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저자를 비롯한 많은 생물학자들이 진행한 연구들, 그에 대한 결론은 물론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질문까지 모든 것이 적절히 배치되어있다. 나 같은 생물학 문외한이 적당한 관심을 갖고 읽어보기에 적합했다. 예시로 나오는 동물들이 너무나 매력적이므로 지루하지가 않다.


그런 사유로 책과 아이패드를 동시에 열어두고 동물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사진을 검색하면서 읽었다. 책의 앞부분에 사진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렇게 동시에 열어두고 보는 게 더 재미있다. 알바트로스는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에서 나오는 우주선(?)의 이름이라 익숙했는데, 막상 그 이름을 구글링 해보니 생각보다 바보같이 생긴 새라서 웃음이 났다.




이왕 꺾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이 책에서 발견한 꺾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끝내보려고 한다. 바이오 로깅을 위한 도구들은 아직도 발전 중이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정밀한 측정을 하기가 아주 어렵다. 값비싼 기기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잃어버리기도 하고, 장비가 고장 나서 데이터를 얻어내는 데에 실패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을 모두 이겨내고 아직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니 그야말로 꺾이지 않는 마음일 테지만, 특히 마음에 남는 케이스가 있다.


케르켈렌가마우지라는 새의 잠수 행동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새에게 프로펠러 형태의 측정기를 부착하는데, (방수 테이프로 붙이면 떼어낼 때 깔끔하게 떨어진다고 하니, 마음이 불편하지 않길 바란다.) 새 스스로 자기에게 달려있는 측정기가 불편해서 쪼아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날 조여있어야 할 프로펠러의 너트가 풀려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연구를 진행하던 저자는 기기로부터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다가 프로펠러가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가마우지가 잠수했을 때 너트가 풀린 프로펠러는 수중에서 돌아갈 수 없으므로 데이터가 제대로 쌓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속으로 ‘저런, 또 한 번의 실패 기로군.’ 이런 생각을 했으나 저자는 한잠 푹 자고 일어나더니 이런 결심을 한다.


“일부터 너트를 풀어서 다시 한번 부착해야지!”


... 대체 왜 그러세요?

물리학은 수능 이후로 쳐다본 적도 없기 때문에 더욱 느리고 자세히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이었다. 너트가 풀려버린 프로펠러는 수중에서는 돌지 않지만, 공기 중에서는 쉽게 돌아간다. 프로펠러가 가마우지가 하늘을 날고 있을 때 회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하여, 저자는 프로펠러의 회전 수 데이터와 풍속의 관계를 조사하면 새의 비행 속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찾아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세계 최초로 새의 비행 속도를 직접 계측하는 데에 성공한다.



주섬주섬 케이크를 먹어치우는 동안 꺾이지 않는 마음에 대해 또다시 생각한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는 것, 예상치 못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는 것. 실패를 곧장 기회로 삼는다는 것은…. 실망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미리 실패를 예상하고 빠르게 포기한다. 그러면 상처를 덜 받는다는 것을 안다. 나 역시 그러한 방법으로 줄곧 나를 보호하고는 했다. 하지만.... 꺾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미리 꺾어버리지 않는 것과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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