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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Jul 20. 2023

매주 도서관 가는 일기: 어른의 일기

23.05.20


매일 쓰던 일기 습관을 놓친 지 지 벌써 6개월이 되어간다. 작년의 상반기를 책임졌던 파란색 다이어리는 장마다 빼곡히 그날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데 그렇게 6개월짜리 다이어리를 꾹꾹 눌러쓴 다음 이번엔 더 많은 기록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산 더욱 커다란 일기장은…. 2개월 정도 열심히 적다가 결국 드문드문 빈칸이 늘어나고 말았고, 마지막 일기는 거의 4주 전에 멈춰있다. 아뿔싸. 내가 나를 너무 믿었구나.


빈칸이 커다란 6공 다이어리의 맨 뒷장에는 필사를 한다. 다행히 책은 매일 읽으니까, 일주일간 읽은 책 중에 마음에 들어 사진을 찍어두었던 구절을 옮겨 적는 것이다. 그 옆 페이지에는 서랍 한 칸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스티커를 골라 붙여 꾸민다. 그러고 나면 어휴, 말도 못 하게 바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일기장을 펼친 김에 한 줄이라도 쓰면 좋을 텐데 그냥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열어둔 채 핸드폰을 꺼내 소파에 눕는다. 오늘치 집중력은 끝이야, 끝.


저의 필사가 궁금하다면 인스타로 오세요.


그렇게 꿈에 부풀어 구매한 내 B6 사이즈의 6공 다이어리는 일기장의 역할은 잊은 채 몇 주에 한 번 쓰는 필사 노트로 역할을 바꾸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러고 나니 다시 일기 쓰기가 간절해지는 것이다. 나, 대체 뭘까?


그리하여 마침 6월도 가까워져 오겠다 일 년이 절반(사실 1년의 절반은 7월 2일이랍니다) 지났으니 새 다이어리를 사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새해마다 다이어리를 고르는 데 몇 시간씩을 쏟아부었던 나이지만 이번에는 일기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좀 더 궁리해 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가장 예쁜 표지를 가진 노트를 골라보자고.






아주 오래전에 전자책으로 <어른의 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워낙 이것저것 열어두고 방치했다가 뒤죽박죽인 순서로 마무리하는 독서 스타일 때문인지 표지만 기억이 난다. 새로운 기분으로 종이 책을 빌려 나왔다.

어른의 일기란 뭘까? 단순히 마흔 살의 어른이 쓰는 일기 얘기이기 때문에 ‘어른의 일기’라고 이름 붙인 것은 아닐 것이다.


끝까지 읽고 나니 이 책이 말하는 ‘어른’이란, 똑바로 바라보기엔 어색하고 창피하고 두렵기까지 한 자신을 솔직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솔직한 시선으로 자유롭게 일기를 쓰는 사람 말이다.




저자 김애리는 스스로를 20년 차 일기 장인으로 소개하는데, 일기 쓰기에 관한 책을 쓰기에 이만한 소개 문구는 없을 것이다. 총 4개로 구분된 장에서 각각 일기를 쓰는 이유, 효과, 방법 등을 안내한다. 무슨 일을 20년 동안 지속한 사람의 조언을 이렇게 솔직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정말 귀하다.


사실 책의 초반에는 ‘일기 쓰기 = 성공한 사람의 자기 관리의 비법이다!’라는 뉘앙스가 살짝 느껴져서 그만 읽을까 고민했는데, 그것은 뒤에서 더 진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밑밥(…)이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또 흔히 ‘갓생’을 산다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진입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테니까 필요한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 무엇 무엇을 했다. 참 재미있었다” 식의 일기도 당연히 괜찮죠!라고 말해주는 일기 코치를 따라가 보자. 그는 일상의 기록 외에도 감사일기, 두려움 일기, 육아 일기 외에도 단기/장기 목표, 브레인스토밍 등 엄청나게 다양한 기록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재미있고 좋은 방법은 ‘아무거나 되는대로’ 노트에 적는 것이라고 한다. 기록의 방식이나 형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특히 “일기를 꼭 매일 써야 하나요?”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기억이 남는다.

일기를 쓴다는 건 결국 나를 잘 돌봐주고 사랑해 주기 위한 일입니다. 그런데 몸이 안 좋고 다른 일이 있는데도 억지로 책상에 앉아 그날의 할당량을 채운다? 그건 자신에게 너무 못되게 구는 일이잖아요! ‘내 몸’의 입장에서는 마치 작정하고 괴롭히겠다는 심보잖아요!


“이런 말만 지껄이기에는 나무에게 미안하고 지구에게도 많이 실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떠오르는 무엇이든 적어보는 겁니다.

..라는 조언도 너무 즐거웠다. 환경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렇듯 일기 쓰기 장인은 일기를 쓰는 데에는 어떠한 제약도 조건도 없다고 말하며 우리를 일기 쓰기의 세계로 꼬드긴다. 정말 뭐든 해도 된다고. 그런데 딱 하나, 정말 중요한 단 한 가지가 있는데, 일기를 쓸 때에는 반드시 솔직하라고. 일기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함이라고 조언한다.


앞서 말했듯, 어른의 일기란 스스로에게 솔직한 일기임을 거듭 강조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진실이 아닌 것은 그 무엇도 일기장에 담지 않는다.



처음엔 “일기를 솔직하게 쓴다”는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기는 당연히 솔직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누가 일기를 지어내서 쓴단 말인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다꾸용”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릴 일기는 최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제외해서 적고 있었다. 누군가 사진을 확대해 볼까 봐 분노나 절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가능한 쓰지 않으려고 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렇다. 일기를 솔직하게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강력히 원하는 마음에 긍정 확언을 100번씩 100일 넘게 쓰고 있으나, 아무런 변화가 없어 초조한 질문자가 있었다. 여기에 저자는 아주 단호히 말한다. 솔직하지 못한 글이고, 뻔한 내용의 글이기 때문에 변화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이다.


여기서 ‘솔직하지 못한 글’은 ‘직면하지 못한 글’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솔직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단계가 있어야만 긍정확언이든 감사일기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 단계 없이 입력과 출력을 반복하는 로봇처럼 “나는 잘 될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100번 외쳐봐야 당신의 깊은 내면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제발 거짓말하지 마! 난 너무 힘들고 괴롭단 말이야. 지금 내 상태 좀 알아줘…”



책의 다양한 소제목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문구로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 대하듯 나를 대할 것>.


책을 끝까지 읽고 내 새 다이어리에 적고 싶은 일기의 형태를 결정했다. 바로 감정일기이다.


책에 소개된 내용 중 가장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감사 일기>는 내 취향에 맞지 않고, <두려움 일기>도 별로 당기지 않는다. 그날 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이 일기의 기본이겠지만, 별책부록처럼 주에 2-3번 정도는 내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래는 저자가 소개한 감정일기를 쓰는 방법이다.   


‘지금’ 내게 찾아온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꼬리표를 붙이지 말고 솔직한 감정을 글로 표현한다.

여기서 말하는 꼬리표란 감정에 나만의 생각과 이야기를 추가하지 말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나는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서 남들에게 미움받는 존재야’는 나의 생각이고, 이때의 감정인 ‘무력감, 고통, 우울, 무가치함, 분노, 슬픔’이 나를 관통하는 감정이다. 이 둘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감정과 나 자신을 동일시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감정을 ‘나’라는 여인숙에 머물기 위해 온 손님처럼 여긴다. 나=고통, 나=무가치함이 아님을 이해한다.

이렇듯 감정을 마주한 뒤에는 그것이 찾아온 것을 인정하고 머물다 갈 것을 허용하겠다고 다짐한다.



읽어보면 노트에 어떤 형태로 감정을 쓰라는 둥의 방법론이 아닌, 감정일기로 나의 감정을 다루는 태도에 대한 조언이다. 어떻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일기 쓰기’는 표면적인 방식일 뿐이며, 저자가 자신을 대하는 성실한 태도를 가장 먼저 배워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를 어떻게 하면 예쁘게 꾸밀 수 있을까만 고민했던 작년의 나와는 달리, 이번에야말로 일기를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아주 성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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