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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Jun 07. 2023

매주 도서관 가는 일기: 천 개의 목격자

23.04.15


이번 주 퇴근 후에는 유독 <그것이 알고 싶다>를 많이 봤다. 유튜브 덕분이다.


영상 매체를 잘 즐기지 못하는 편인데도 어쩐 일인지 틀어 놓기만 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요약본을 보기도 하고, 사건 비하인드나 <그알>의 선량한 등장인물들과의 인터뷰 같은 영상까지 섭렵했다. 그간 지독하게 단조로웠던 내 취향에 지루함을 느끼던 알고리즘이 신이 난 듯 다음 콘텐츠를 제안하는 바람에 멈출 수가 없었다. 어제 보니 홈 화면이 죄다 <그. 알>로 바뀌어있더라.



어제도 유튜브를 보느라 저녁 시간을 홀라당 다 써버렸다. 나는 멀미가 심해 영상 미디어를 오래 볼 수 없는 몸인데, 이번 주는 정말 색다르게 보낸 편이다. 범죄를 소탕하는 정의의 사도들을 보는 것은 즐거웠지만 아무래도 미제 사건들을 다루다 보니 꿈자리는 좀 뒤숭숭했다. 아침에 무거운 몸을 일으키면서 ‘도서관에 가서는 꼭 사랑에 관한 다정한 산문을 읽어야지’ 다짐했다. (그렇다. 또 사랑을 갈구했다.)



매번 그렇지만 도서관에 어떤 책을 읽어야지 다짐하면 그중 7할은  지켜지지 않는다. 날씨나  기분 등에 따라 눈에  들어와 박히는 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 개의 목격자>라는 제목에 먼저 눈이 갔고, 다음으로 저자의 이름을  다음 홀린   등을 뽑아냈다. 일주일 내내 <. > 미친 듯이 달린 내게 익숙한 이름의 저자가 거기 있었다.  개의 목격자라는 수상한 제목도 “황민구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완벽하게 이해되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공식 영상 분석가 황민구 소장의 책이라니! 이건 읽어야 해. 당장 대출 기기에 바코드를 찍고 카페로 달렸다. 밤잠을 설친 탓에 집중력이 떨어질까 봐 샷을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저자가 <그알저알> 나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적이 있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여유 있는 말의 속도, 약간 둥글게 들리는 발음, 의외의 곳에서 터지는 ‘과학자스러운유머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책에 녹아있었다.


 부드럽고 둥그런 이미지 너머 약간은 의외인 면들도 함께 드러난다. 특유의 날카로움과 냉철함은 물론이고 아이 같은 승부욕과 어른의 야망도 함께 드러나서 좋았다.  첫사랑 얘기를 해주는 인기 좋은 선생님의 면모도   있었다. (첫사랑 파트에서 꺄아, 낮게 소리 질렀다! 카페가 아니었다면 바닥을 굴렀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다면적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책에서는 그의 집요함이   면밀히 드러난다. 그가 방송에서 보여주었던, 영상을 보고 단번에 증거가 될만한 화면을 낚아채는 기술은 그냥 터득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뭐랄까. 꿈에서까지 도식을 완성하기 위해 애쓰고, 잔인하고도 두려운 장면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번이고 잔혹을 반복 재생하는 집요함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파생된 패시브 스킬이라고나 할까.


특히 고통받는 피해자나 유가족을 보면  집요함이  발휘되는  같다. 분노를 이렇게 쓰는 사람도 있구나, 새삼 멋있었다. 안될 것을 직감해 좌절할 때에도 유가족을 위해 다시 한번 힘을 내기도 한다.


얼마 뒤면 9주기를 맞는 세월호 참사 영상 분석도 삼사  가까이 매달렸다고 하니 ‘ 영상 분석가 ‘소장님보다는 히어로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어제는 누명을  사람을 도와 무죄 판결을 받아내었어요,라고 말하는.





미안해서, 봐야만 했다.


그는 책의 후반부에 자신의 직업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아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내비친다. 그도 그럴 것이 ‘천 개의 목격자’는 다름 아닌 CCTV이고, 무서울 정도로 직설적인 이 목격자들이기 때문이다.  영상 분석가는 아무리 슬프거나 두렵거나, 혹은 잔인한 장면이라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보아야 한다. 자신의 분석 결과가 법적 증거로 쓰이기 때문에 더욱 부담이 클 것 같다.


앞선 챕터에서 그가 아무리 좋지 못한 영상을 돌려보더라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자신만의 비법을 의기양양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의 속사정을 걱정하느라 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책을 정말 잘 쓰셨군요.






얼마  친구와 직업윤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주고받은 끝에 우리는 자기 일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람만이 결정적인 순간에 직업윤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을 돈벌이로만 여긴다면 직업적 소명이나 윤리 의식보다 이득이 우선이  것이다. 사람이 이익만 추구하다 보면 어떻게 괴물이 되는지 이미 많은 사례를 통해 알고 있지 않나. 무엇보다 나의 직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만이 눈먼 욕심으로 직업에 먹칠을 하지 않을 용기를 가질  있다.




< 개의 목격자> 등장하는 헐렁한 분석과 악의적인 왜곡을 일삼던 분석가 1 보면 어디 주물에서 뽑아왔나 싶을 정도로 전형적이다. 내가 보기에  사람은 나쁘거나 모자란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 직업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돈만 벌면 장땡이라는,  그런.


책에 등장하는 두 분석가를 보면 (흑과 백, 선과 악이라는 식으로 이분하는 사고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앞으로 내가 가져야 할 태도가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다. 언제나 직업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의식을 저버리지 않기. 그러면 아주 먼 미래에 돌아본 나의 궤적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영웅들과 조금, 아주 조금은 비슷한 모양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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