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위버멘쉬'와 '아모르파티'를 떠올리며
"난 운동화 끈 못 묶어."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중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친구 연지(가명)가 운동화 끈을 묶지 못한다면서 저한테 묶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쪼그려 앉아서 연지의 운동화 끈을 리본 모양으로 묶어주는데 묘하게 친구가 부러워졌어요.
저라면 쪽팔려서 절대 말 못 할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그 태도가 부러웠다고나 할까요? 그 당시 저는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제가 '평균 이하'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보통 사람들 눈에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바로바로 하지 못해서 혼이 난 적이 많았거든요. 열쇠로 문을 열고 잠그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 밤새 문밖에서 서성이던 일, 두 발 자전거를 타지 못해 늦은 밤까지 시달리다 결국 매를 맞은 기억까지 그 시절의 제가 눈에 선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다짜고짜 화를 내니까 무서워서 몸이 얼어버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더 혼이 나고 악순환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혹시 아시나요? 어떤 것을 못할 때, 가장 힘든 사람은 그렇게 부족한 스스로를 볼 수밖에 없는 자신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저는 오랜 시간 깊은 자기혐오에 시달렸습니다. 남보다 확연히 부족한 것 같은 내 모습이 싫었고, 그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겁이 났어요.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만약 제가 연지처럼 운동화끈을 묶지 못했다면 그것을 평생 비밀로 했을 겁니다.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슴에 묻어두었겠죠. 그래서 연지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단점을 말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어요.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요. 아마 그게 무슨 문제냐는 식으로 태연하게 대꾸할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보면 연지가 더 부러워질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전 연지에게서 묘한 벽을 느끼고 차츰 멀어졌고 그러던 어느날 연지와 비슷한 듯 다른 친구 '옥림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연지의 당당함에 특유의 똘끼까지 갖춰 더 눈이 갈 수밖에 없었어요.
보통은 시험 성적이 좋지 않으면 공개를 꺼리는데, 옥림이는 오히려 망한 성적표를 들고 사진을 찍어요. 심지어 사진에 '난 공부를 못해'라는 제목을 붙이는 센스까지 보여줄 정도죠.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사진을 이용해 사진 동아리에 합격하는 데 이어, 전교생이 다 아는 유명인이 됐을 때는 입에서 절로 감탄이 나왔답니다.
이쯤 되면 연지와 옥림이가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할 수 있겠어요. 둘 다 사고방식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으니까요.
답을 공개하자면, 연지는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당당한 기조로 살고 있어요. 자신이 잘하고 못 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인정하죠. 부족한 부분은 도움을 받고, 잘하는 부분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요. 덕분에 자기 분야에서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잘 살아가고 있죠. 운동화 끈 일화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을 못하는 것 같지만요.
옥림이 근황은 잘 모르겠어요. 서로에게 소홀해져서 서서히 멀어진 것도 아니고, 옥림이가 갑자기 잠수를 탄 것도 아닙니다.
사실 옥림이는 오래전 종영한 드라마 주인공이에요. 드라마가 끝이 나면 등장인물들의 삶도 그 속에서 정체되고 마니, 현시점에서 제가 그녀의 근황을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죠.
이쯤에서 옥림이가 누군지 밝히자면, 그녀는 거의 20년 전 KBS 2TV에서 방영했던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 시리즈 주인공입니다. 시즌1에서 옥림이의 중학생 시절이 담겼다면 시즌2에선 고등학생이 된 옥림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이번에 제가 언급한 에피소드는 시즌2에 포한된 내용입니다. 옥림이는 얼핏 보면 왈가닥 소녀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여린 구석도 많은 친구였어요. 그래서 그녀를 중심으로 우정과 연애부터 학업 성적, 진로 고민까지 다채롭게 다뤄 동시대 청소년들의 공감을 듬뿍 샀죠.
저 역시 옥림이의 일상을 지켜보며 그녀의 삶을 응원하던 시청자이자 친구였어요. 물론 어느덧 서른이 넘은 저와는 달리 옥림이는 드라마 속에서 여전히 고등학생으로 남아있지만요.
하지만 꿈 많고 당찼던 옥림이를 그저 고등학생으로만 남겨두기엔 아쉬워요. 이 마음은 마치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낸 친구의 안부가 불현듯 궁금해지는 심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래서 저는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 옥림이가 어딘가애서 살아 숨 쉬는 실존 인물이라고 가정해보려고 해요. 민약 그렇다면, 30대 옥림이는 아마 뭘 하든지 간에 자기 분야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자랑하며 멋지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10대 시절, 망한 성적표를 당당하게 오픈하면서 "나는 공부를 못한다"라고 말하는 용기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고등학생인 옥림이를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유튜브에서 접한 옛날 드라마 영상이었어요. 30대 중반이 되어 과거의 장면을 다시 보니 그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밟히더군요.
나를 정말로 구박하고 미워한 사람은 엄마도 누구도 아니고 나였어. 난 내가 늘 부끄러웠어. 날 사랑한 적 없어. 이제 날 부끄러워하지 않을 거야.
옥림이가 자신의 망한 성적표를 세상에 공개하기 전, 선전포고하듯이 내뱉은 멘트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녀의 말은 과거와 지금의 나에게 전하는 꾸짖음 같았거든요.
돌이켜보면, 저는 제가 단점밖에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기에 제 모습을 최대한 숨기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저에게도 장점이라는 게 있을 텐데 그 모든 것을 모르는 척하고 오직 단점에만 집중했던 것이죠. 옥림이의 말처럼 저를 정말로 구박하고 미워하고 부끄러워한 사람은 저였던 것입니다.
두 사람과 저의 차이점을 생각하니,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삶의 목표로 제시한 '위버멘쉬(Übermensch)'가 떠오릅니다. 한국어로 '초인'으로도 번역되는 위버멘쉬는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긍정하고, 기존의 자신을 넘어서 발전하는 인간상을 말하니까요. 니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연지와 옥림이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자신 있게 공개한 점이 그들을 더욱 특별하면서도 고유하게 만든 게 아닐까요? 삶이란 자신의 결점과 상처까지 전부 품으며 그 삶의 모든 것을 긍정할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돌이켜보면, 스스로 정체돼 있다고 느낀 것은 저 자신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 채, 저를 똑바로 보지 못했던 것이 큰 것 같아요. 제가 저의 장단점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 그때 제 삶이 앞으로 나아가겠죠? 이 글은 제가 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저는 아직도 새로운 분야, 특히 몸을 움직이는 분야에선 행동이 느리고 그런 저를 남들이 어떻게 볼지 걱정하지만 이제는 그런 저를 숨기지 않으려고 해요. 어떤 것을 못하면 그만큼 잘하는 것이 있는 게 인간이니까요. 앞으로는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저를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니체의 '네 운명을 사랑하라(아모르파티(amor fati))'는 말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