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아내의 유혹’ 다음 편은 궁금해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았던 '빅터 프랭클'을 떠올리며

by 소서

"죽고 싶긴 한데 <아내의 유혹> 다음 편은 궁금해." 2008년 겨울,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해 수능을 처참하게 망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고작 수능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 저는 겨우 열아홉이었습니다. 수능 망해서 좋은 대학교를 가지 못하면 그것만으로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어린아이였죠.


그때만큼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했던 적은 없었을 겁니다. 물론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는 않았기에 어떻게 하면 최대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방법을 고민했죠. 그런데 쉽게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요. 계속 생각하니까 머리만 아팠고요.


머리가 너무 아파서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아픈 머리를 식히는 방법으로는 생각 없이 어떤 것에 몰두하는 게 딱이니까요. 그런데 마침 텔레비전에서 드라마 한 편이 나오더군요. 그게 바로 앞서 언급했던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었습니다.


드라마 ost인 차수경의 <용서못해>부터 귀에 꽂혔습니다. 파워풀한 목소리로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만 해"라고 외치는데, 진짜 노래 듣는데 마음이 아프더군요. 여기서 "너"를 수능이라고 생각하면서 들었더니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드라마 줄거리 자체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자신을 배신한 남편과 절친에게 복수하는 게 주된 흐름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 구은재(장서희) 능력이 거의 '신'급이라는 점이 저를 흥분하게 했습니다.


민소희로 위장한 뒤 복수를 위한 계획을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는데 이 과정이 진짜 장난 아닙니다. 그녀는 "할 거예요. 해보겠습니다. 해볼게요"라면서 모든 것을 다 해내거든요. 불과 한두 달 만에 영어부터 프랑스어 등 온갖 외국어를 마스터하는가 하면, 승마와 골프 등 고급 스포츠까지 다 섭렵할 정도죠.


이 설정은 왜 저를 흥분하게 했을까요? 저도 그렇게 '장난 아닌'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불과 "할 거예요. 해보겠습니다. 해볼게요" 단 세 마디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뚝딱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죠.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저는 너무나 무기력해져 어떤 것을 새롭게 할 힘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런 판타지 같은 설정에 혹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죽기 직전 우연히 틀었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내가 저런 능력을 가진다면 어떨까. 인생이 너무 짜릿하겠다- 이런 식으로요.


드라마에서 구은재의 복수 과정이 너무나 통쾌하게 펼쳐지는 것도 눈을 뗄 수 없게 했습니다. 구은재가 마음먹은 대로 전부 이뤄지는 것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다 못해 신이 났죠.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 그녀의 복수를 응원했습니다. 마치 실존 인물인 것처럼 말이죠.


그때의 저에게 구은재는 저의 친구이자, 또 다른 '나'였습니다. 저는 구은재의 복수가 어떻게 끝이 날지, 그녀가 어떻게 행복해질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죽을 수가 없었죠. 죽고 싶긴 한데, 죽으면 '아내의 유혹'을 못 보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아내의 유혹>도 끝이 나더군요.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음편만 보고 죽어야지 싶었는데, 막상 드라마가 '진짜' 끝나니 죽기 싫어진 겁니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던 걸까요? 그때의 저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니체가 말했듯이-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지 알면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때의 저는 죽고 싶은 와중에도 드라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그 마음이 저를 계속해서 살아나가게 했다고 봅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거듭된 활약은 저에게 "살아남아 다음 편을 보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했던 것이죠.


글을 쓰다 보니 죽음의 수용소에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았던 빅터 프랭클도 떠오릅니다. 특히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취할 태도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제 마음을 울려요. 열아홉 살의 제가 죽기로 결심했을 때, 텔레비전을 켜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제 이야기를 할 기회도 얻지 못했을 테니까요. 어린 날 무지했던 저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줬던 <아내의 유혹>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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