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앙'에서 자기사랑으로 (ft.에리히 프롬)

전남친을 "개새끼"로 부르던 미정이 달라진 이유.

by 소서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나던 놈들은 다 개새끼." 2022년 종영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김지원)이 한 말입니다. 전남친을 "개새끼"라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격하게 공감한 대사였죠.



저의 지난 연애를 돌이켜보니, 연애의 시작은 매번 달랐으나 이별의 순간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 연애는 언제나 스타벅스에서 끝이 났더군요. 데이트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 헤어질 것 같은데' 굳이 분위기 좋고 예쁜 카페를 찾아가는 것도 웃기잖아요. 게다가 스타벅스는 과장 좀 보태서 길 좀 걷다 보면 하나씩 보일 정도로 매장이 많으니, 곧 남남이 될 두 사람이 입장 정리하고 서로 갈 길 가기에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스타벅스와 이별에는 묘하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전국 어디에 있든 스타벅스는 그 특유의 공통된 분위기를 풍기듯 헤어지는 순간도 그랬으니까요.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은 매번 달랐으나, 이별 멘트는 거의 동일했습니다. 상대는 제 눈빛을 피하면서 이제 더는 설레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그를 저주했습니다. 오래 만나면 익숙해지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누군 설레서 만난 줄 아나. 망할 XX. XX나 돼 버려라-하는 식으로요.


그런 만남이 반복되니 저는 어느덧 염세적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인연을 만나도, 시작의 순간에서조차 끝을 생각하는 게 버릇이 되었죠. 물론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만남이 잘 될리는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탓했습니다. 사람을 불신하게 된 까닭은 그 XX를 만난 탓이라면서요. 그렇게 저는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을 아까워했고, 그의 앞날에 불행만 있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나의 해방일지> 미정은 저와 다르더군요. 드라마 초반부터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구씨(손석구)와의 관계에서 특히 그랬습니다. 말없이 일만 하고, 일이 없을 땐 술만 마시는 구씨에게 느닷없이 자신을 '추앙'할 것을 요구하니까요.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너는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높이 받들어 우러러본다는 뜻을 지닌 '추앙'은 드라마에서 사랑보다 훨씬 숭고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남녀 로맨스 이상의 모습을 보여줘요. 서로를 추앙하면서 이들은 점차 달라지는데요. 미정의 변화는 더욱 놀랍습니다. 그녀는 구씨가 갑자기 잠수를 타고 사라져도 욕은커녕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기를. 숙취로 고생하는 일이 하루도 없기를"이라고 기도할 정도로 의연한 모습을 보이니까요.


누군가는 그녀의 행동에 의아함을 드러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정은 그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요? 구씨를 위해 굳이 기도한 장면에선 미정의 굳은 의지가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자신을 떠난 전남친들을 저주했던 지난날의 행동을 반복하지 않은 것이니까요. "당신은 내 머릿속의 성역이야. 결심했으니까. 당신은 건들지 않기로."


구씨를 향한 추앙을 계속하면서 달라진 미정의 일상은 더욱 드라마틱하게 펼쳐집니다. 일단 안색부터 달라지죠. 항상 불안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편안해집니다. 심지어, 자신의 돈을 떼먹고 도망쳤던 전남친이 성추행 누명을 쓸 위기에 처하자 그의 편을 들어주기까지 하죠. 거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인데요. 압권은 마지막 회에서 나옵니다.


나 미쳤나 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전남친을 "개새끼"라고 표현했던 미정이 스스로를 사랑스러워하게 되기까지-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달라지게 만든 걸까요? 아마도, 어떤 상황에서도 구씨를 '추앙'하고자 한 미정의 의지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미정의 추앙에서 저는 사랑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특히 미정은 사랑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도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져요.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사랑함으로써 세상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까지도 사랑함"을 뜻하니까요. 또한, 구씨가 미워질 것 같으면 얼른 그를 위해 기도했다는 발언에선 미정이 이전보다 자신을 아끼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것은 최초의 청자가 본인이라는 점에서 자기 자신에게 가장 해로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미정은 구씨를 추앙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자신에게 이로운 행동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를 향한 기도 역시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고요.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서 어느덧 마음속 미움은 걷히고, 사랑만 남아있는 자신을 보게 된 게 아닐까요? 그래서 마지막회에서 환하게 웃는 미정의 모습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참, 새로운 희망도 발견했습니다. 늘 사랑이 고파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었다"며 울부짖던 미정이 추앙의 힘으로 변화했던 것처럼- 저 역시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누군가를 진정으로 ‘추앙’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요.


물론 추앙의 방식은 미정과는 다소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추앙은 본래 스스로가 받고 싶은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 같거든요. 이에 따라 저의 추앙은 상대를 향한 무한한 지지와 격려,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식으로 이루어지겠습니다. 다소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따뜻하게 안아주려고요.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처음엔 다소 어색할지라도, 계속하다 보면 자연스러워지겠지요? 그를 향한 추앙이 능숙해질수록 제 자신을 향한 사랑도 점차 두터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상대에게 건네는 따스함은 그에 앞서 따스함의 원천인 저를 더 따뜻하게 할 테니까요. 이로써 저도 제 자신을 더 사랑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사랑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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