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은 마음이 끝내 평정심을 찾기까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책 <명상록>에서 '평정심'을 강조했습니다. 평정심은 말 그대로 감정의 기복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뜻해요. 하지만 일상에서 이러한 마음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특히 '또라이 질량 불변의 법칙(어느 집단을 가더라도 일정 수의 또라이는 항상 존재한다는 용어)'이라는 신조어가 있을 정도로 별 사람이 다 있는 회사 생활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글 X라 개판이네." 회사를 다니던 시절, 과장 살짝 보태서 몇몇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말이에요. 저는 인터넷 매체 여러 군데를 전전하며 기사 쓰는 일을 주로 해왔는데요. 업무 관련 지적을 들을 때마다 깊은 자괴감이 들어 괴로웠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적어도 1인분은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못 하는 것 같아서 그랬죠.
그러면서도 반감이 치솟았습니다. 지나 잘하면서 그딴 소리를 하던가-와 같은 불평이 올라왔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회사를 다니는데, 마음이 편안할 리가 없었습니다. 분노는 쉽게 내려가질 않았습니다. 쓰디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있는 힘껏 들이켜야 겨우 내려갔죠. 덕분에 저는 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날에도 시린 손을 달래가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허겁지겁 주문하던 기억이 있네요.
하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선택했던 게 글쓰기 클래스였어요. 주로 소설과 드라마 등 창작과 합평 위주로 이뤄지는 수업이었죠. 클래스에 참석한 이유는 직장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동시에 작가라는 또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직장에서보다 더 절망적인 순간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피드백을 가장한 비난을 하는 이들이 있었거든요. 물론 대부분은 예의가 있었지만 어디나 그렇듯 몇몇 사람들이 문제였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을 만큼 어이 없는 지적도 있었어요. 드라마 수업에서 만났던 이름 모를 한 여자였는데 제 글의 한 장면을 보고는 "회사 한 번도 안 다녀본 사람이 쓴 것 같다"라고 지적을 하더군요. 해당 장면은 그저 회사에서 메신저로 동료 및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부분이었는데 말이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간의 회사 근무 경험까지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저는 퉁명스럽게 "제가 다닌 회사는 저랬어요"라고 답했어요.
가끔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울었습니다. 퇴근길에도, 클래스를 마친 후에도 기분 나쁜 경험은 잊히지 않았어요. 어쩌면 남이 보기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말에도 기분이 몹시 상했죠. 지금 생각하니, 당시 제 마음은 곳곳에 난 상처가 곪아 터지기 직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주 살짝만 스쳐도 몹시 쓰라리고 아파서 과민반응했던 것이 아닐까요? 몸에 난 상처에 새살이 돋는 연고를 발라주듯이 마음 속 상처에도 그러한 과정이 필요했는데 방치했던 게 실수였죠.
그렇게 마음의 연고를 찾던 차, KBS 2TV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온 한 대사가 제 마음에 꽂히게 됩니다. 마치 제 마음에 들어온 것마냥 격하게 공감했던 멘트였거든요.
마음에는 굳은 살도 안 배기나?
맨날 맞아도 맨날 찌르르해요.
드라마 주인공 동백(공효진)의 대사입니다. 동백이는 극중 작은 시골 마을에 나타난 외지인 설정 상, 마을 사람들의 시기 질투를 받으면서 힘들어해요. 이에 "두부를 조각칼로 퍽퍽 떠내는 그런 느낌"이라고 푸념했죠. 하지만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동백이의 다음 멘트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웬만하면 사람들한테 다정하고 싶어요.
다정은 공짜니까 그냥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
동백이의 말처럼 다정한 마음과 친절한 말투는 공짜입니다. 하지만 쓰라린 상처가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이에게 따스함을 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특히 동백이의 경우 어릴 때 부모 없이 홀로 자란 데 이어, 커서는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신세니까요. 불평불만을 늘어놔도 이상할 것이 없어보이는 상황에도 다정함을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백이는 점차 마음 속 상처를 회복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데요. 이 또한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군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든 것은 준 만큼 돌려받게 되니까요. 만약 동백이가 사람들의 냉대에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그녀는 더더욱 악순환에 빠지지 않았을까요?
주목할 장면이 또 있습니다. 극 초반 동백이를 아니꼽게 보던 마을 사람들의 변화 과정이에요. 이들은 동백이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계속 되자, 자신들이 오해했음을 깨닫고, 그간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거든요. 이 장면에선 "너의 선의가 꾸민 것이거나 가면을 쓴 것이 아니라 진심이라면 그러한 선의는 언제나 통하게 되어있다"라고 했던 아우렐리우스의 가르침이 연상되는군요. 동백이야말로 그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마치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태양처럼, 다정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차디찬 마음을 녹였으니까요.
여러 우역곡절 끝에 세상 속에서 행복해진 동백이처럼, 저 또한 사람들에게 다정한 마음을 주겠노라 생각해봅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피드백을 가장한 비난에 상처받았던 제가 한때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모임을 지향하며 글쓰기 모임을 열었던 이유이기도 해요. 다른 이의 펜을 꺾게 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듯이- 다른 이에게 같은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요. 물론 저는 여전히 동백이처럼 작은 지적에도 "맨날 찌르르해요"하는 처지이지만, 쓰는 사람이 또 다른 글쓴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쓰는 마음'을 북돋아주는 것이 아닐까요? 이를 위해 다정한 마음은 필수고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함께 글쓰는 누군가를 응원하고자 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어요. 지금 당신의 '쓰는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추위도 더위도 타지 말고 늘 편안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