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한 '글쓰기' | 드라마 '또오해영'
좋은 드라마는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에서 나에게 깊이 와닿는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니까. 나에게는 그런 작품이 tvN <또 오해영>이었다. 특히, 오해영(서현진)이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고백하는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난 내가 여기서 좀만 더 괜찮아지길 바랐던 거지, 걔가 되길 원했던 건 아니였어요.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열등감과 자기 연민에 괴로워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늘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살아왔다. 느리고 서툴렀던 나의 행동은 언제나 꾸중의 대상이 되었고, 특히 어머니는 그런 나를 더 채찍질했다.
“왜 그렇게 굼떠? 좀 빨리 좀 해!” 어머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질 때마다 나는 움츠러들었다. 나를 변화시키려는 어머니의 말은 결국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엄마가 답답해하며 나를 몰아붙일수록, 나는 점점 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갔다. 마음은 서둘러야 한다고 아우성쳤지만, 몸은 꼭 고장 난 로봇처럼 얼어붙어버렸다.
한 번 화가 난 엄마의 모습이 무서워서 더 급하게 움직이려다 실수라도 하게 되면, 상황은 더 나빠졌다. 나의 실수를 지적하는 목소리와 얼굴 가득한 실망감은 나에게 "너는 왜 이 모양이니?"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해주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나라는 존재 자체가 결함투성이인 것만 같았다. 더 빨리,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나는 나를 제대로 표현할 기회조차 잃어갔다.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특히, 한 살 터울의 동생과 비교될 때마다 열등감은 깊어졌다. 내 눈에 비친 동생은 빠르고 영리해서 어머니의 꾸중도 덜 듣는 것 같았다. 동생 옆에 있으면 스스로가 참 초라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억울한 감정도 들었다. '엄마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셨더라면,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미 뼛속 깊이 새겨진 열등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자랐다.
그렇게 자라 어른이 된 후에도 나는 "왜 나는 이럴까? "라는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부족한 점만 바라보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ADHD 진단을 받으면서 어릴 적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들의 이유를 하나씩 알게 되었다. 왜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는지, 왜 움직임이 느렸는지, 왜 항상 집중력이 흐트러졌는지 말이다.
그때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감이 밀려왔다. 내가 부족했던 게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그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으니까.
이 깨달음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물론, 열등감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에 마음이 머물러 있을 때면,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끼고 가슴 한편이 쿡쿡 아파온다. 하지만 확실해진 한 가지가 있다. 느리고 서툰 나의 모습 덕분에,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나는 ‘글쓰기’에 더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들은 나에게 작은 해방과도 같았다. 불완전한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시간. 거기에는 남의 시선도, 스스로를 꾸미려는 욕심도 들어오지 못했다. 오직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에 귀 기울이며 나를 마주하는 시간만이 존재했다.
그래서인지 글을 쓸 때면 조금은 더 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글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드라마의 한 대사를 빌리자면,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부족한 것들에만 시선을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 혹은 나만의 방식으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다. 글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다워질 수 있었다. 서툴고 느린 내 모습을 품어 안으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글쓰기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쓴다는 건 단지 나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다. 나를 치유하는 동시에, 나와 비슷한 고민과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도 손을 내미는 일이었다. 내가 부족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처럼, 내 글 또한 누군가에게 작지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다시 펜을 든다. 부족한 내 모습도 그대로 끌어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앞으로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를 때마다 계속 써 내려갈 것이다. 내가 쓴 글이 나처럼 느리고 서툴렀던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끝까지 읽어 준 당신에게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