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받고 있는 그 사랑을 | 눈이 부시게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사랑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어쩌면 모든 삶은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되는 사랑일지도. 오해와 섭섭한 마음마저도 표현방식의 차이에서 온 것이 아니었을까.
JTBC <눈이 부시게> 한 장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들은 늘 자신에게 엄하게 대했던 엄마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는 "평생 내 앞의 눈을 쓸어주던 게 엄마였어"라며 눈물을 보인다. 알고 보니 엄마는 몸이 불편한 아들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지 걱정이 되어 더 강하게 키우려고 모질게 대했던 것일 뿐,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는 다행히도 두 사람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표현 방식의 차이로 인해 오해가 쌓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에 이런 일이 빈번하지 않은가. 이는 서로에게 원하는 사랑의 방식이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특히 사람은 자신이 간절히 받고 싶었던 방식으로 자식을 사랑하기에, 더더욱 그 오해가 깊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생각을 하면 괜스레 마음이 슬퍼진다. 단편적인 기억들에 의존해 "엄마는 나를 싫어했어"라고 결론지어버렸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라서다. 어릴 적 내가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면 엄마는 언성을 높여 크게 혼을 내곤 했으니까.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확신했다. 엄마는 나를 싫어한다고. 그렇게 엄마의 차가운 태도는 어린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다. 엄마의 사랑은 늘 나를 감싸고 있었다는 것을. 입시준비로 스트레스를 받던 그날도 그랬다. 엄마는 평소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오셨는데 손에는 내가 좋아하는 빵이 한가득 들려 있었다. "너 좋아하는 거 사 왔어. 얼른 먹고 공부해."
그날 나는 그 무심한 말속에 담긴 사랑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엄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끝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랑의 깊이를 깨달은 적도 있다. 어린 시절 엄마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소녀였다. 하지만 책을 사서 읽을 수 있는 환경은 그녀에게 사치였다. 그랬기에 엄마는 가까운 책방에 들러 발이 아플 때까지 서서 책을 읽었다고 하셨다. 엄마가 어린 시절 느꼈던 그 갈증을 알게 됐을 때에야, 내가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게 됐다.
어릴 적 내 마음의 안식처는 서점이었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엄마는 내 표정이 어두울 땐 조용히 자신의 카드를 내밀며 서점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 엄마의 카드를 덥석 받아 들고는 서점으로 향했었다. 서점에서 읽을 책을 고르고, 집으로 돌아와 책을 펼치던 순간, 엄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새 책을 들고 앉아 읽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다정한 눈빛의 의미를 이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채우지 못했던 갈증을 우리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진심을. 그렇게 우리를 키우며 이루지 못한 지난날의 자신 또한 위로했던 것임을.
이제는 안다. 사랑의 표현 방식은 지극히 다양하고 그 속에 담긴 진심을 이해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떤 순간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선명해진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삶이란 바로 그런 깨달음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과거의 경험들, 그리고 상처로 남았던 기억들이 삶이 어느 지점에선 중요한 깨달음으로 다가오곤 하니까.
물론 어떤 날의 깨달음은 스스로를 너무나 쓰라리게 할 수도 있다. 오랜 오해가 풀리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누군가의 진심을 깨달았을 땐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럴 땐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이 오히려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오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이런 깨달음마저 사랑의 한 단면이라는 사실이다. 때로는 사랑 때문에 아플지라도, 사랑의 다양한 면모를 알게 되면서 우리는 더욱 깊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수많은 사랑이 있었음을 아는 자만이, 자신의 삶에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기에.
사랑이 종종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다는 사실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내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이 그랬듯이 때로는 묵묵한 배려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사랑, 그 사랑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더 세심해질 필요가 있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세심한 마음이 겹겹이 쌓여, 나와 다른 타인의 수많은 사랑 표현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내가 되길.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랑의 순간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사랑을 받고 있는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사랑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일상에서 스쳐갈 수도 있었던 사랑을 발견하는 과정 또한, 우리에게 지극한 기쁨을 준다는 것을, 당신도 알 것이라 믿는다.
익숙한 노래 가사의 한 구절처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을 곱씹어보기도 한다. 지금도 그 사랑을 받고 있다는 그 메시지처럼, 사랑은 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이제는 안다. 비록 우리의 기대와 다를지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일지라도 사랑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사랑을 더 일찍 알아채고 더 자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