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면역력이 필요하니까 |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약 먹고 나서 어때요? 좀 나아졌어요?”
“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료를 위한 약물의 효과를 묻는 의사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애매한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약을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이 약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만약 팔이 부러졌다면, 상처의 회복 정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직관적으로 알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분명했던 한 가지는 약을 먹는 것이 먹지 않을 때보다 낫다는 사실이었다. 약을 먹기 전, 내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고, 그 혼란은 그대로 내 글에 투영되었다. 과도한 불안감은 한 문장을 완성하는 것조차 방해했고, 우울감은 그 한 문장 안에 나를 가둬버렸다. 마치 아무리 한 단어를 써내려가도 그 문장이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안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약을 먹기 전의 나는 생각과 감정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머릿속에서 끝없이 돌아가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내게서 에너지를 앗아갔고, 불안감은 내 손끝을 떨리게 하며 무엇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끔은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컴퓨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단어 몇 개를 겨우 채우고는 그마저도 지워버리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울감은 나를 깊이 가라앉게 만들었다. 한 문장을 완성해도, 그 문장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춘 채 나를 붙잡았다. “이게 맞을까? 이 문장은 너무 어설픈 것 같아. 다 지워버리고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가뒀고, 결국 나는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한 채 손을 놓아버렸다.
그럴 땐 견딜 수 없을 만큼 씁쓸해졌다. 이제 약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건가 싶어서
그런 내게 뜻밖의 위로가 된 것은 한 드라마의 장면이었다.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에서 송유찬(장동윤)이 약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까 봐 걱정하자,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누가 뒤에서 잡아주면 안정감이 들잖아요? 약도 그래요. 흔들림을 줄여주는 거죠. 그러니 억지로 약을 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어느 순간 손을 놓아도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는 것처럼 약도 그렇게 되어갈 겁니다.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게 될 거에요."
드라마에서 든 자전거 예시처럼, 약도 내 마음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생각해보면, 감기에 걸렸을 때 감기약을 먹고, 증상이 심해지면 주사도 맞듯이, 그러다 몸이 괜찮아지면 병원 방문을 줄이듯이 마음 역시 마찬가지인데,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나는 왜 그렇게 전전긍긍했을까? 게다가 약을 먹으면 마음이 한결 안정돼서 글도 더 잘 쓸 수 있는데 말이다.
글은 그 당시의 마음을 반영하기에, 마음이 흐리면 어둡고 탁한 글만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마음이 괴로울 때 썼던 글을 다시 살펴보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진다. 부정적이고 우울한 문장이 가득한 글에선 음산한 기운마저 느껴지니까.
하지만 약을 복용하고 상담을 받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자, 내 글에도 밝은 색이 칠해지기 시작했다. 딱딱하고 엄숙하기만 했던 글에서 여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듯 부드럽게 읽히고, 흐릿했던 문장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가며 의미를 갖추기 시작한것이다. 얼마 전에는 내 글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독자의 메시지에 큰 힘을 얻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글은 이런 글이다. 나 자신과 독자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글.
그렇기에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내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아직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니까. 내 삶에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내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것이니까. 이를 위해 건강한 몸과 마음은 필수다.
글을 쓰다보니, 나를 칭찬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다른 부위와는 달리 아픈 마음을 돌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다. 마음의 고통은 종종 자기혐오에서 시작되기에 아픈 자신을 방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에, 그런 자신을 돌보고자 결정하는 것도 당사자로선 큰 결심이기에. 그런 결정을 한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물론 나 역시 삶을 비관하다 죽음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끝내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삶과 죽음에는 그 나름의 때가 있다고 믿어서다.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시간을 견디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가까스로 붙잡고, 생의 한 가운데서 내 마음을 보듬고 어루만지며 살아갈 다짐을 하는 것 또한 내겐 큰 용기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글쓰기에 집착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야 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도 필요하니까.
약과 상담이 내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마음을 다독여줬다면, 글쓰기는 그런 내 마음을 언어로 정리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줬다.
물론, 우울과 불안은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방 청소를 며칠만 게을리해도 금세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마음도 잠깐의 방심으로 어지럽혀지기 마련이다. 작은 불안감이 틈을 타 마음속에 스며들고, 그 불안이 꼬리를 물며 더 큰 혼란으로 번질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이 어지럽고 머리가 핑 도는 순간마다 나만의 작은 위로를 찾는다. 바로 공원을 걷는 일이다.
공원을 걷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의 불안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볼 때, 그리고 발밑에서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내 마음속 어지러운 소음들이 점차 잦아든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비록 완벽하지 않고 더디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 모든 과정이 결국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낙엽이 떨어지고 쌓이는 과정을 자연스러운 계절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듯, 내 마음속 변화와 흔들림 또한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 모든 깨달음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렇게 낙엽이 쌓이고 흩날리는 길 위에서, 나는 또 한 걸음 내딛는다. 그것이 결국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길임을 믿으며.